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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믿고 빚 불리는 ‘공룡 공기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22 17:41

수정 2014.10.27 06:44

정부 믿고 빚 불리는 ‘공룡 공기업’

'공공기관 손실보전 의무조항'이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부담을, 공공기관에는 재무책임성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손실보전 공공기관의 발행 채권이 일반적인 공공기관 부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이런 가운데 과다부채 공기업의 재무구조를 평가하는 체계적인 절차를 신규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손실보전' 공기관 부채 207조원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7월 발간한 '2012 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 평가'를 살펴보면 정부가 손실을 보전토록 되어 있는 12개 손실보전 공공기관의 2012년 말 총부채는 270조1069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2년 전체 공공기관 부채 총액 588조7000억원의 45.9%, 국가채무 443조1000억원의 61%, 특히 국가보증채무 32조7836억원의 8배(823.9%)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증가 속도 또한 2010년 대비 20.2%로 매우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 우려스럽다는 시각이 많다. 손실보전 의무조항이 향후 국가재정의 잠재적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해당 공공기관의 부채 통계치에 가시적으로 적시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원재 연구위원은 22일 "손실보전 공공기관의 부채가 더욱 문제시되는 것은 정부의 간접 보증 형태인 해당 기관의 발행 채권이 정부의 직접 보증채무(국가보증채)와 유사한 효과를 갖는데도 불구하고 채권 발행 규모와 내용 등에 관한 견제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보증채의 경우 국가재정법에 의해서 정부가 '국가보증채무관리계획'을 세우고 국회에 제출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를 통해 국회가 보증채무의 규모 및 관리계획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손실보전 공공기관 부채와는 대조적이다. 더구나 손실보전 공공기관의 발행 채권은 일반적인 공공기관 부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일반 공공기관 채권보다 더욱 철저히 관리될 필요가 있다는 게 대다수 민관 경제전문가들의 제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손실보전 의무조항이 적용되는 공공기관의 경우, 정부의 간접적 지급보증을 받아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부채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이들 기관에 대해 채권 발행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국가보증 채권에 준해서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현재 손실보전 대상 공공기관은 12곳으로 석탄공사, 광물자원공사, 토지주택공사, 코트라, 한국장학재단,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무역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정책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등이다.

다만 한국장학재단의 경우 "국가재정법에 의한 국가보증채무관리 계획을 세우고 국회 승인 하에 운영돼 채권의 규모와 발행 등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재단 관계자가 밝혔다.

■"공기업, 일반회사로 개편을"

2012년 기준 전체 공공기관 부채규모 약 493조원(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39%)은 국가채무 약 443조원보다 크다. 이 중 LH, 한전(6개 발전자회사 포함), 가스공사, 도로공사, 석유공사 등 10개 공기업 부채가 전체의 약 73%를 차지한다.

이들 10개 공기업의 부채규모는 1997년 59조원에서 2012년 358조원으로 15년간 299조원 증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기관 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 공기업들은 현재도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기획재정부 경영평가 등을 받고 있지만 부채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공기업의 비효율적인 경영을 감시, 감독하는 현 평가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기업들은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자금조달 비용에 영향을 주는 신용도를 평가받을 뿐만 아니라 부실징후가 있는 기업들은 사전에 채권은행을 중심으로 재무구조 평가를 받는 등 선제적 기업구조조정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데 비해 공기업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주요 공기업은 직접 금융시장에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공개(IPO)를 통해 주식발행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 공기업의 유동성 위험이나 도산 위험이 가시화될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런데도 현재 대부분의 중요 공기업들은 국내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NICE 신용평가로부터 최고신용 등급을 받고 있다. 재무건전성이나 사업내용이 탄탄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 가능성과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 등의 외적 요인을 반영시킨 탓이다.

정부의 지원 가능성으로 인해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공기업은 비슷한 수준의 재무상태를 가진 민간기업에 비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자본시장의 효율적인 자금배분 기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에 따라 향후 공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각종 제도의 개선방안이 공기업 부채관리를 위한 여러 방안과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지난 20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건전재정포럼에서 "공공기관의 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국영기업 지주회사 설립,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의 독립 행정위원회 개편 등 대안이 필요하다"며 "'자율과 책임'의 원칙 아래 모든 공기업을 상법상 일반회사로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