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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 사람은] (15·끝) ‘카카오+다음’ 공룡포털 탄생한 2014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그 시절, 그 사람은] (15·끝) ‘카카오+다음’ 공룡포털 탄생한 2014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2000년 이후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겪어 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미국발 금융위기,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9·11테러, 가계 부실, 집값 하락, 내수경기 침체, 세월호 참사 등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다사다난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도 명멸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이하여 창간 이후 21세기 대한민국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14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2014년 5월 26일 포털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모바일 메신저 업체 카카오의 합병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있다. '한게임' 'NHN(현 네이버)' '카카오'…. 모두 김범수 의장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업계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김범수 의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한 가지에만 몰두하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김 의장의 부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상경해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을, 어머니는 지방에 머물며 식당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2남3녀 중 맏아들이었던 김 의장은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입학해 서울대 공대 졸업 및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이후 김 의장은 1996년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하고 1998년 삼성 퇴사 후 한게임을 설립했다.

그가 대학 졸업 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한 우물만 파자는 것." 김 의장은 인터넷 사업 영역 중 '커뮤니케이션' 한 가지에 집중해 '게임'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된 소통을 꿈꿨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 의장에게는 아침마다 40분간 샤워를 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다. 책 '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에 수록된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 의장은 "40분간의 샤워를 통해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무의식과 집중적으로 대화하는 과정을 즐긴다. 그 속에서 문제를 푸는 다른 경로를 찾고 새로운 해법을 발견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 창업 초기부터 1등만을 고집하던 그의 대범한 행보는 PC방 사업, 게임 사업, NHN 경영 등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빅딜'에 올인한 승부사

김 의장은 1998년 삼성SDS를 퇴사하고 그해 11월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다. 당시 다음은 '한메일'과 '카페'로 인터넷 내에서 전성기를 누릴 때였으며 서울대 동기이자 삼성SDS 연구소 동료이던 이해진도 주식회사 네이버컴을 설립해 인터넷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시점이었다.

김 의장은 창업 후 서울 한양대 인근에 '미션 넘버원'이라는 PC방을 차리고 게임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곧 'PC방 알바'라는 관리 프로그램 덕분에 막대한 PC방 프랜차이즈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등 PC방 사업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김 의장은 창업 1년 뒤인 1999년 말 한게임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회원수 1000만명 돌파를 앞두고 그는 돌연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결정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당시 네이버컴과 한게임은 각각 사이트 방문자와 인력 및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 네이버컴은 한게임과의 합병으로 성장세에 탄력을 받게 돼 합병 4년 만인 지난 2004년 다음을 서서히 앞지르게 된다. 또 그는 검색광고와 온라인게임 유료화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키며 결국 인터넷 시대 주도권의 무게중심은 다음이 아닌 NHN(네이버)으로 옮겨가는 데 성공하는 쾌재를 이뤄낸다.

이후 김 의장은 2007년 NHN USA로 발령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NHN을 떠났다. 이미 지난 2006년 12월 아이위랩을 설립했던 시점이다.

또 그는 2008년 3월과 6월 미국에서 가족들과 지내며 '부루'(BURU)라는 소셜북마킹 서비스와 '위지아'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PC웹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모바일을 지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결국 그는 국내로 돌아와 2010년 3월 '카카오톡', 4월 '카카오아지트'를 내놓으며 모바일 시대 1등 자리를 본격적으로 공략해 '카카오 전성시대'를 열었다.

■'다음카카오'의 탄생

지난 5월 26일 월요일 오전 7시30분께 김 의장은 포털.모바일 업계에 또 하나의 충격을 안겼다. 국내 1위 모바일 메신저 업체인 카카오가 국내 2위 포털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두 기업의 합병으로 시가총액 3조원 넘는 거대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김 의장은 카카오 직원들에게 "이번 합병은 다음과 카카오의 차별적인 핵심경쟁력을 통합해 시너지를 내기 위해 진행됐다"며 "글로벌 IT 모바일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이라 믿는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오는 10월 '다음카카오'의 신설 법인이 출범할 예정인 가운데, 다음과 카카오는 당분간 독자적인 사업을 운영해 나간다. 합병은 코스닥에 등록돼 있는 다음이 카카오를 흡수하는 형태로 이뤄지기는 하나 실제로는 비상장기업이지만 기업가치가 훨씬 큰 카카오가 다음을 통해 우회 상장하는 셈이다. 주식 교환 비율은 카카오 주식 1주당 다음 주식 1.556주로 산정됐다.

■'주식부자 1조원 클럽'의 주인공

합병 후 김 의장은 '다음카카오' 지분 39.8%를 가진 최대 주주가 된다. 현재 다음의 최대 주주인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4대 주주(지분율 3.4%)가 된다. 이와 동시에 김 의장은 '주식부자 1조원 클럽'에 바로 진입할 전망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김 의장은 카카오가 다음을 발판으로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하면 보유 주식 가치가 9169억원으로 30, 40대 신흥 IT 주식부자 순위 4위로 단숨에 진입한다.

여기에 김 의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사 케이큐브홀딩스의 지분가치 490억여원을 합치면 김 의장의 주식재산은 9664억원으로 불어나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9589억원)을 능가한다. 김 의장의 주식가치는 다음·카카오 통합법인의 최대주주로 상장 후 주가 상승 등으로 1조원을 훌쩍 넘어서 2∼3위와 순위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의 한 수'에 모아진 시선

앞서 그동안 카카오는 사용자 정체 상태가 지속되면서 위기론이 제기됐다. 해외시장 개척은 지지부진하고 아시아권에서는 네이버 '라인'이 한발 앞서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김 의장은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다음에 모바일을 선물하면서 다음으로부터 많은 개발자와 콘텐츠를 받은 것이다. 이제 네이버를 1위 자리에 올려놨던 것처럼 다음카카오를 1위 자리에 올려놓는 숙제만 남았다.

일부에서는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시너지효과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PC를 기반으로 한 다음의 플랫폼과 모바일 중심인 카카오의 결합이 실제로 어느 정도 시너지효과를 창출할지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원론적 수준에서는 시너지효과가 있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합병법인 다음카카오에 실제 이익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국내 시장이 포화한 상황에서 결국 다음카카오에 남겨진 과제는 글로벌 공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모바일 메신저의 경우 중국은 위챗, 일본과 대만·동남아는 라인이 대세로 자리 잡았고, 미국과 유럽은 와츠앱과 페이스북이 굳건한 1위다. 카카오의 전체 가입자 수는 1억4000만명으로 경쟁 서비스인 라인(4억2000만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모바일 시장에서 선점효과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이는 다음카카오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그간 카카오가 해외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카카오는 일본과 동남아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렸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카카오의 일본 법인인 카카오저팬은 지난해 10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다음 역시 몇 번의 해외 진출 시도가 있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글로벌에서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둔 적이 없는 두 업체의 결합이 과연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창출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의 시선도 있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이 가운데 김 의장은 합병 발표 이튿날 홀연히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떠났다.
어린시절 함께 지낸 시간이 많지 않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이는 어찌 보면 다음카카오의 미래가 이미 그의 머릿속에 충분히 그려져 있다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윤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