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직급파괴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수년 전 일부 기업들에서 시작된 직급파괴가 재계 전반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학력과 근속연수를 중심으로 한 기존 인력운영체계로는 기업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현행 직급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이르면 내년 초부터 새로운 직급체계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다만 도입 시기는 계열사별로 차이를 둘 예정이다.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개편안은 포스코가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포스코는 기존 직능자격제를 연봉제와 월급제 직군으로 구분해 직군별 직무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직급제도를 지난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연봉제 직군은 역할과 성과에 따라 승진과 보상이 이뤄지는 '성과주의' 직급제도로 운영된다.
월급제 직군은 현장 기술력 축적에 적합한 기존 직능자격제를 유지하며, 장기근속에 합당한 동기부여 강화를 위해 직능자격 명칭과 승진제도를 운영 중이다. 포스코 안이 적용될 경우 신세계 계열사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임직원들은 연봉제 직군에 해당돼 성과주의 직급제도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룹 내에 제조업체가 거의 없어서다.
쉽게 말해 임원급을 제외한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구성된 직급을 모두 없애 '매니저'로 단일화하고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겠다는 게 이 제도의 골자다.
신세계그룹이 직급파괴 대열에 동참하면서 직위와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전문성과 책임'이 부여되는 매니저 제도가 재계의 인사 트렌드로 자리를 굳혀가게 됐다.
앞서 아주그룹도 25개 계열사 모두 매니저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SK텔레콤·포스코·한화·롯데 등도 이미 매니저로 명칭을 통일하거나 직급을 단순화한 상태다. CJ그룹은 2000년부터 직급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여서 부르고 있다.
재계에 직급파괴 현상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배경에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화되면서 뿌리 깊은 직급중심의 문화가 조직의 역동성과 유연성을 제약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해외 우수인재의 확보 목적이 강하다. 파격적인 보상과 대우 없이는 이들의 확보·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계층과 위계를 거부하는 젊은 직원들의 요구도 반영됐다.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2013년 국가경쟁력은 25위지만, 노동시장 효율성은 78위로 국가경쟁력 하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도 148개국 중 130위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무한경쟁시대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조직규모보다는 회사의 사업 특성과 조직구조를 고려하고, 전사 일괄적인 직급체계보다는 직군별 업무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되고 다양한 직급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ironman17@fnnews.com 김병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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