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대출 받아 집 안사고 생활비로 쓴다

고민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17 17:49

수정 2014.10.24 10:06

대출 받아 집 안사고 생활비로 쓴다

#1. 50대 직장인 한모씨는 최근 집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들의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일부 자금을 보태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내년이면 둘째 아들 역시 군 제대를 하기 때문에 추가 학비까지 필요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4~5년 정도 있으면 정년이니 그때 받는 퇴직금으로 은행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2. 외식 관련 창업을 준비 중인 40대 이모씨도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대출한도 및 이자 부문에 있어 신용대출이나 기존 창업대출보다 집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이 제일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금 회사를 그만 둔 상태여서 (은행에선) 담보가 있어야만 대출을 해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저축은행에선 신용대출은 가능하지만 담보대출 대비 금리가 너무 높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렇다 보니 갖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주택담보대출에 생계형 대출자들이 몰리고 있다.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한 부동산 규제 완화 및 금리인하 정책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을 살 것'이라는 당국의 공식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집값 상승 여력이 높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나 전세가율 90%를 웃도는 일부 실거주 밀집지역, 투자가치가 높은 위례신도시 등지에선 주택담보대출로 매매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지역에선 본인이 살고있는 집을 담보로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는 분석이다.

■"주택구입용도 한정적이다"

17일 한국은행 및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양도 포함)은 380조7000억원 수준으로 전월 대비 2조7000억원가량 증가하는 등 올해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매월 지속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월별 주택매매거래량에선 다소 엇갈린 추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주택담보대출 월말잔액은 전월 대비 2조4000억원 증가한 378조원을 기록했지만, 전국 기준 월별 주택매매거래량은 4646가구 감소한 7만3108가구로 집계된 것. 같은 기간 대비 서울지역 주택매매거래량도 1만853가구에서 9907가구로 하락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을 구매한다고 가정한다면 대출 증가액이 늘어날수록 주택 거래량도 자연히 증가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도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공식이 깨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개인여신부 관계자도 "지난 1일부터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지역에 상관없이 각각 70%와 60%로 상향 적용되면서 문의전화나 지점을 찾아오는 상담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실제 주택구입용도보단 집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빌리겠다는 목적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특히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은퇴시기에 맞춰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한 창업자금용도나 자식의 결혼자금 및 학자금 마련 등을 위한 생계형 대출도 꾸준히 늘고있다는 전언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경기 불황을 타고 여신 리스크 관리에 상당히 민감한 은행 입장에선 대출의 우선순위 조건으로 담보물을 요구한다"면서 "때문에 생활비와 같은 긴급자금이 필요한 고객들이 집을 담보로 대출받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은 지역에선 기준금리까지 내려간 마당에 고정금리 대출을 기피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고, 경기 불황을 타고 가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대출이 더욱 늘어나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부채 악순환 고리 어쩌나"

때문에 일각에선 가계부채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올 초부터 은행들은 당국의 '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에 따라 고정금리. 분할상환 비중을 40%까지 확대하기 위해 저금리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한편으로는 중소기업대출 등을 통한 수익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에 있어 내집 마련이 아닌 생계형 대출이 많다는 건 그만큼 부실 우려가 커질 여지가 많아진다는 의미"라며 "실제 중소기업 등이 주택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고, 또한 주택담보대출이 늘었다고 주택경기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로 바라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gms@fnnews.com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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