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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두장옌(都江堰)의 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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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두장옌(都江堰)의 순리

새해가 밝았으니 벌써 지난해 늦가을이 돼버렸다. 그때 박원순 서울시장을 따라 중국 두장옌(都江堰)에 갔다. 두장옌은 쓰촨성 청두에 가까이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최고 오래된 수리관개시설이다.

이 시설은 요순시대, 더 정확히 말하면 순임금 때 건설됐으니 적어도 4000여년 전 일이다. 이 무렵을 역사적 시간으로 따지면 신석기 후기시대에 속하니, 너무나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때 축조된 강둑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전돼 내려오고 있다.

두장옌을 건설한 이는 바로 하우(夏禹)라는 사람이다. 그는 후에 수해를 잘 다스렸다는 공로로 순임금으로부터 천하를 얻었다. 그 현장이 바로 두장옌이다.

그 시절 인간은 감히 자연을 개척하기보다는 순응하며 지냈으리라. 그러나 순임금은 하우를 임명해 홍수예방 치수사업에 들어갔다. 협곡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세찬 물줄기를 잡아낸 이는 이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이곳 치수사업은 요임금 때부터 이뤄졌으나 홍수피해는 계속됐다.

그러나 하우는 이 물줄기를 단번에 잡아냈다. 하우는 먼저 선조들의 치수 실패 요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선조들은 굽이치는 물길의 속성을 따져보지 않은 채 그저 제방을 높이 쌓기만 했다. 물 흐름의 자연적 원리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홍수가 지면 매번 둑이 무너지기란 너무나 당연했다.

하우는 물길을 억지로 막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높은 곳에는 둑을 쌓고 낮은 곳에는 준설을 해 물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줬다. 자연에 순응한 것이다. 그러자 수해는 나지 않고 풍년이 들었다. 태평성대가 온 것이다.

많은 민초들이 하우의 치수정책에 찬사를 보냈다. 순임금의 그때 나이는 80세. 그는 하우의 치수정책을 인정해 천자의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그 시절 홍수와도 같은 근심거리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사회적 갈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갈등은 천하의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갈등이 지난 연말 서울시에서도 폭발했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놓고 그렇게 됐다. 헌장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으나 폭력으로 얼룩진 채 무산됐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이 헌장안에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 공청회에서 동성애 반대론자들은 단상을 점거해 파행시켰다. 이에 앞서 수차례 다양한 시민의견을 청취했으나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다. 동성애 찬·반론이 뜨겁게 달궈졌다. 급기야 성소수자 인권을 요구하는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밤샘 농성이 서울시청 안에서 각각 이어졌다.

'두장옌의 순리'를 본 박 시장은 이들과의 면담을 통해 갈등을 봉합시켰지만 동성애 찬반 논란에 대한 시청 앞 시위는 을미년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박 시장은 또다시 보·혁 간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됐다. 특히 진보단체는 시민단체·인권변호사 출신의 박원순이 보수로 변절했다며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이번 인권헌장을 박 시장이 선포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 변절했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선택은 옳았다고 본다. 순리에 따랐기 때문이다. 무릇 지도자라면 박 시장처럼 중도를 택해야 한다. 그의 선택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 판단이다. 중립적인 지도력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요 화합이다.

이런 판단을 놓고 작금에 일고 있는 변신 여부에 대한 논란은 온당치 않은 일이다.


다시 두장옌 수리시설이 생각난다. 그때 시퍼렇게 굽이치는 물줄기를 하염없게 바라보던 박 시장의 모습이 지금 눈에 선하다. 그날 하늘에서는 요순시절 홍수를 연상시키는 가을비가 웬만치 내리고 있었다.

dikim@fnnews.com 김두일 사회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