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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뮤지컬 '사비타'가 두 개인 이유

파이낸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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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7 17:07

수정 2015.04.27 17:07

[기자수첩] 뮤지컬 '사비타'가 두 개인 이유

지난달 한국 뮤지컬 1세대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최정원을 만났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이하 사비타) 얘기가 나왔다. '사비타'는 1995년 초연돼 '소극장 뮤지컬'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한국 창작뮤지컬의 효시 격이다. 최정원은 초연 당시 남경읍, 남경주와 함께 무대를 달궜다. 현재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오만석, 김다현, 김소현, 소유진 등이 이 작품을 거쳤고 지난 2008년에는 일본에 판권을 수출하며 한국 뮤지컬 사상 첫 해외진출 뮤지컬로 등극하기도 했다.

이 뮤지컬이 올해 20주년을 맞아 기념공연을 한다.
최정원은 초연 때를 회상하며 "오랜만에 '사비타'를 다시 볼 수 있게 돼 흥분된다"고 했다. '오랜만에'라는 단어가 귀에 꽂혔다. 처음엔 바빠서 '사비타'를 볼 겨를이 없었다는 말로 이해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가 포함돼 있었다. 오랜만에 '원작'을 보게 됐다는 뜻이다.

현재 인터넷 검색창에 '사랑은 비를 타고'를 치면 공연을 앞둔 동명의 2개 작품이 나오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하나는 6월 6일 개막하는 '사랑은 비를 타고(SABITA)'이고 다른 하나는 5월 1일 개막하는 '사랑은 비를 타고(Between Raindrops)'다. 전자는 초연 스토리를 그대로 살린 원작이고, 후자는 제목만 남기고 스토리와 음악을 완전히 바꾼 새 작품이다. 부제가 조금 다르지만 제목만 보고서는 같은 이름의 다른 공연이란 사실도, 둘 중 무엇이 원작인지도 알기 어렵다. 티켓을 예매하려는 관객이 혼란에 빠지는 지점이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2004년 '사비타'의 각본가·작곡가와 제작·기획·연출자 사이의 저작권 싸움이 발단이다. 2007년 고등법원은 창작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각본가와 작곡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제목에 대해선 법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소송은 일단락됐다. 같은 이름의 다른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격돌하게 된 이유다.

공연계의 저작권 논란은 해묵은 과제다. 관계자들은 "공연 저작물에 대한 보호법이나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다른 공연인데도 원작의 명칭을 사용해도 된다는 법적 판결을 받은 '사비타'가 있는 반면 최근 '어린이 캣츠'는 뮤지컬 '캣츠'의 제작사 설앤컴퍼니가 제기한 제호사용금지 소송에서 해당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한 관계자는 "창작자가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를 정립하지 않는 이상 한국 공연예술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문화 융성의 열매를 기대하려면 밭부터 잘 갈아야 한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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