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빗나간 의리' 법정 거짓말 늘어 골치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05 17:44

수정 2015.05.05 17:44

위증·증거인멸죄 수감 인원 2년새 44%나 급증

'빗나간 의리' 법정 거짓말 늘어 골치

#. 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모씨(72)는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자동응답시스템(ARS) 여론조사를 통해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2008년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자 김씨는 선거사무실 직원이자 내연녀인 서모씨를 증인으로 신청한 뒤 "'ARS 조사는 서씨가 독자적으로 결정했고 김씨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말해 달라"며 허위진술을 부탁했다. 결국 위증교사죄로 기소된 김씨는 최근 징역 8월의 실형을, 서씨는 위증죄로 징역 6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거짓 증언으로 사법질서의 신뢰를 훼손하는 이른바 '법정 피노키오'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 사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워낙 은밀히 이뤄지는 범죄라 적발이나 혐의 입증이 쉽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의리' 문화가 깊숙이 박혀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위적 강요나 친분관계 많아

5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위증 및 증거인멸죄'로 기소돼 1심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2012년 1181건에서 2013년 1250건, 지난해 1313건으로 증가 추세다.


징역형과 금고 등 교도소에 수감되는 인원도 2012년 131건에서 2013년 167명, 지난해 189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판결문 수십건을 분석한 결과 위증 유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피고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위증을 강요하는 경우다. A씨(56.여)는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교회 부설 어린이집에서 국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을 부풀려 청구하기 위해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원생의 출석부를 조작하도록 지시했음에도, 목사인 남편과 함께 교사 B씨(45·여)에게 '출석부 조작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허위로 증언하도록 시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선 사례의 서씨처럼 '피고인과의 친분관계'로 위증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밖에 피고인에게 '온정을 느껴 합의'를 한 뒤 증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C씨(36)는 음주운전 상태에서 D씨(62)에게 상해를 가하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피해자 D씨는 C씨와 합의한 후 "교통사고 직후 명함을 받았다"고 허위 증언을 하다 위증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허위 진술 등 처벌조항 없어

이처럼 위증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데는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사회문화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엄연한 죄이지만 친분에 따른 허위증언을 대수롭지 않은 행위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피고인과 은밀히 합의가 이뤄지는 범죄 특성상 적발이 쉽지 않은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앞선 김씨의 사건도 내연녀 서씨가 금전문제 등으로 사이가 틀어진 김씨를 고소하면서 뒤늦게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공식 자료는 없지만 위증죄에 대한 검찰의 인지율(인지수사/인지수사+고소.고발수사)은 20%대에 불과하다는 게 법조계의 전언.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위증죄는 관련 사건에서 위증을 한 사람들과 피고인 간의 우호 관계가 틀어져 고소.고발로 뒤늦게 범죄가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소가 돼도 명확한 증거가 없는 사건이 많다 보니 법원 역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분야다.

특히 수사기관에서의 허위진술이 법정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면 위증 여부를 판단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수사기관이나 자신이 기소된 사건에서 허위진술을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는 점도 위증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현행 형법은 피고인이든 참고인이든 법정에서 선서하고 증언하기 전까지의 수사기관의 허위진술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여기에 피고인 본인의 사건은 법정에서 허위진술하는 것조차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사나 재판절차에서 거짓 진술을 한 경우에는 확실히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탁균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수사단계의 거짓 진술에 대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사법방해죄 도입도 해볼 수 있다"며 "재판과정의 증언에 대해서도 가급적 증언내용을 100% 조서에 기재해 거짓증언을 했을 경우에 이를 사후적으로라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법원이 위증에 대해 형량을 높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근절 방안을 제시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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