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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슈퍼박테리아와 기후변화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06 17:08

수정 2015.05.06 17:08

[fn논단] 슈퍼박테리아와 기후변화

실뱀처럼 생긴 연가시의 변종이 생겨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뇌를 조종해 많은 사람이 죽는다. 치사율 100%. 특효약을 가진 다국적기업은 최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량이 모자란다고 갖은 핑계를 대며 약을 제때 공급하지 않는다. 나라 전체가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으로 들끓고 사업에 실패한 제약회사 직원은 감염된 처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2012년에 개봉된 영화다. 변종 연가시가 생겨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전제에서 이 영화는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감염이라는 대재난이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못지않게 심각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항생제를 제대로 개발해 이런 대재난에 대비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각 지역이 항생제 오남용 대처와 개발에 매우 미흡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항생제를 견디는 세균의 심각성을 최초로 분석한 이 보고서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모든 종류의 세균, 특히 많은 바이러스와 기생충이 점점 항생제에 내성이 생겼다. 이게 현재의 전염병 치료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다"라고 이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유럽에서도 연간 2만5000명 정도가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균 때문에 죽는다고 추정된다.

영국 정부의 최고의학자문관(CMO) 샐리 데이비스 교수는 항생제를 견디는 박테리아가 기후변화처럼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효과가 없는 약'이라는 책에서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분석했다. 1987년 이후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높은 연구개발 비용 때문에 새로운 항생제를 출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기존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균이 점차 증가해 왔다. 여기저기 슈퍼박테리아가 생겨났다는 것. 그는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그리고 기후변화처럼 각국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데이비스 교수의 조언을 받아들여 대재난을 목록화한 국가리스크목록에 항생제 내성 연구도 올렸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제약회사들과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WHO 보고서는 세계 6대 대륙별로 항생제 대처 상황을 기술했을 뿐 국가별로 준비 상황을 상세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약품 사용량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놀랐던 점은 감기가 심해 병원에 가도 웬만해서는 약을 처방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푹 쉬라는 의사의 조언이 처방전이다. 우리나라는 성인 인구 1000명당 의약품 하루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5위를 기록했다. 의약품 오남용이 심하다.


기업들은 이윤을 추구한다. 국가가 나서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게 필요하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흔한 전염병에 걸려서도 약이 듣지 않아 사망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날 확률이 높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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