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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대머리독수리의 발톱을 피하는 방법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14 16:48

수정 2015.07.14 16:48

[차장칼럼] 대머리독수리의 발톱을 피하는 방법

'대머리독수리' 하면 자연스레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동물의 사체를 먹는 독수리를 떠올리게 된다. 잔인하게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는 치워야 할 쓰레기를 먹어서 없애주니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대머리독수리를 의미하는 영어는 '벌처(vulture)'다. 그리고 펀드에는 '벌처펀드'라는 게 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하는, 때에 따라 기업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배를 불리는 투자기법이 대머리독수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졌다. 현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면서 치열한 표대결을 벌이고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대표적인 벌처펀드 가운데 하나다.


대머리독수리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날짐승을 찾기는 쉽지 않다. 3000m 상공에서 비행할 수 있고 1.6㎞ 밖의 물고기를 볼 수 있는 시력을 지니고 있다. 사냥을 하기 위해 공중에서 급강하하는 속도는 자그마치 시속 160㎞에 이른다. 어느 날 갑자기 '7%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며 경영참여를 선언한 것처럼 '뒤통수치기'에 아주 적합한 능력을 가진 셈이다.

대머리독수리는 자신의 체중의 절반에 해당하는 먹잇감을 들고서도 날아오를 수 있다. 한계를 뛰어넘는 물고기를 사냥했을 경우 발톱과 거대한 날개를 사용해 육지까지 '수영'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정작 대머리독수리 자신은 알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큰 나무의 꼭대기에 둥지를 짓는다. 매년 같은 곳의 둥지를 보강해 계속 쓰는 경우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발견된 둥지는 넓이가 2.7m, 길이가 6.1m, 무게는 무려 1814㎏에 달했다.

엘리엇은 운용자산 26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헤지펀드다. 주주의 권익 확보를 앞세워 다양한 기업과 국가를 공격한다. 지난 2003년 미국 프록터앤갬블(P&G)과의 법적 분쟁 등은 모두 합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위기를 물고 뜯어 자신들의 이익만 챙겼다는 도덕적인 비난까지 피할 수는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럴싸한 '명분'이 있으니 자신들의 숨겨진 욕심을 정당화할 수 있고 지지세력을 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실제 경영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그렇게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 스스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처럼 5%도 안 되는 낮은 지분율을 가진 대기업 총수들이 계열사의 도움을 받아 지배력을 유지하는 한 엘리엇과 같은 벌처펀드의 공격은 다른 대기업에도 예외 없이 계속될 것이다.


궁극의 해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투명한 기업지배구조와 주주 친화적인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것만이 대머리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을 피하는 길이다.
앞서 소버린, 헤르메스, 아이칸 등 다수의 '먹튀' 외국자본에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것이기도 하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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