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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송현동 부지

황상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9 17:03

수정 2015.08.19 17:03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일대 3만6642㎡.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다. 지난 수년 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대한항공은 이곳에 7성급 한옥 관광호텔을 지을 계획이었다. 지하 4층 지상 4층으로 아담하지만 기와지붕을 이어 전통문화의 체취가 느껴지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조선 500년의 정궁인 경복궁 옆자리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서울을 대표하는 한국형 명품 호텔이 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7년 꿈을 접었다.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서울 중부교육청은 이 계획을 불허했다.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학교와 직선거리 200m) 내에 위치해 호텔이 들어서면 학습 환경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곳은 덕성여중고와 풍문여고가 인접해 있다. 행정소송도 냈지만 패소했다. 2013년에는 학교 옆에도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18일 새로운 계획을 내놓았다. 호텔을 짓지 않고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문화융합센터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이다. 가칭 '케이-익스피리언스(K-Experience)'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으며, 송현동의 역사.문화적 특색을 살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진다. 전통 장인들의 작품 제작과정도 볼 수 있다. 호텔은 아니지만 한류관광의 새로운 명소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당초 정부로부터 이 땅을 구입한 기업은 삼성생명이었다. 2002년에 미술관을 짓겠다며 사들였다. 그러나 미술관 건립을 포기하고 2008년 대한항공에 2900억원에 되팔았다.

송현동 부지는 우리 역사의 숨결이 서린 곳이다. 조선 초기에는 안평대군의 사저였다. 인조 때는 봉림대군의 사저로 사용됐으며 숙종 때는 장희빈이 잠시 거처했다. 아픈 기억도 함께한다. 구한말 친일파 윤덕영의 형이자 순종 황제의 장인인 윤택영이 소유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식산은행으로 넘어가 적산가옥이 되는 수모도 겪었다. 광복 후에는 미군이 점령해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했다.

송현동 부지는 동서로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를 잇는 역사축과 남북으로 인사동과 북촌마을, 삼청동을 연결하는 문화축의 교차점에 있다.
경복궁에서 운현궁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옛날 이곳에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고개가 있었던 듯하다.
송현(松峴)은 '소나무 고개'라는 뜻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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