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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칼럼] "차라리 파업을 하지"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14 16:59

수정 2015.09.14 16:59

수출·내수 동반부진에 재고 늘어 기업, 관리비용·할인판매 이중고
벼랑끝 위기에 노조 '나몰라라'
[정훈식 칼럼]

"안팎으로 차가 제대로 안 팔리니 요즘 같으면 차라리 노조가 파업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최근 모 자동차 회사 한 관계자가 푸념하듯 던진 말이다. 파업 때문에 난리인 마당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그러나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이 말에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정은 이렇다.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의 터널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수출과 내수의 동반부진이 1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시장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차라리 파업'은 제조업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수출.내수 동반부진은 재고량 증가를 의미한다. 실제로 지난 7월 제조업의 재고율은 평균 129%를 넘는다. 2000년대 들어 최고 수준이다. 가뜩이나 덩치가 큰 자동차 제조업 같은 사업장도 당장 재고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재고는 기업에 이래저래 부담이다. 당장 재고물량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여기에 출고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차량은 '재고' 딱지를 붙여 가격을 깎아줘야 하니 또 부담이다. 요즘엔 차대번호만 대면 소비자가 생산공장과 날짜, 심지어 출고시간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소비자는 출고된 지 한 달 이상 된 재고차량을 싫어한다. 이왕 재산목록 1호인 새차를 사는데 금방 출고된 따끈따끈한 차량을 원하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선 정상적 상황이라면 안 들여도 될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수익성은 떨어진다.

수요는 줄고 재고는 쌓이니 차 한대 파는 게 아쉬운 마당이다. 그래서 일부 자동차회사는 출고된 지 한 달 된 신차도 재고할인에 나선다. 차 떼고 포 떼는 격이니 수익성은 악화일로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입장에선 노조가 나서서 파업을 해주면 '땡큐'다. 파업 기간엔 무노동·무임금이니 인건비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진짜로 노조의 파업을 원하는 회사가 어디 있겠나.

가뜩이나 제조업은 가격과 기술 경쟁력을 놓고 대내외적으로 샌드위치 신세다. 갈 길이 천리인데 고용환경마저 앞뒤로 꽉 막혔으니 하는 말일 게다.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인 중후장대산업, 즉 자동차·조선산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중국차의 저가공세와 유로화 및 엔화 약세를 등에 업은 해외 경쟁사들의 공세로 한국 차업체들은 중국 등 해외시장은 물론이고 내수시장마저 속절없이 내주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중국 내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6%나 줄었다. 내수시장에서 수입차 비율도 2002년 1%에서 작년 14.7% 그리고 올 상반기엔 16.6%로 급속히 잠식당하고 있다.

제조업의 위기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함께 고비용.저효율의 불합리한 사업구조에 따른 경쟁력 약화가 주된 원인이다. 특히 경쟁력 약화는 경직된 노동시장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며 당장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이다. 임금체계와 근로조건 개선이 핵심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체의 평균 연봉은 9234만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폭스바겐(9062만원), 도요타(9351만원)보다 더 높다.
제조업 사정이 이럴진대 일부 대기업 노조는 여전히 막무가내식 임금타령하며 파업으로 몰고가는 형국이다. 가뜩이나 사면초가인데 회사야 어떻든 노조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파업에 열을 올린다.
금호타이어와 현대중공업이 파업에 들어간 데 이어 현대차 노조도 지난주 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요즘 같은 시기에 노조의 파업은 회사로서 불행 중 다행일까, 다행 중 불행일까.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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