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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1-②) 꽉 닫힌 돈줄, 꽉 막힌 창업

(1) 창업 트라이앵글의 척박한 현주소 2. '날개 없는 엔젤' 투자그룹의 딜레마
'닷컴버블'로 쓴맛 본 벤처캐피털 스타트업에겐 '까칠한' 투자잣대
저커버그도 한국에선 성공 못한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 받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잠재성장성보다 매출액이 더 중요
'묻지마 투자' 악몽때문에..
1990년대 말 벤처붐 때는 투자 넘쳐났지만 닷컴버블 붕괴 이후 투자 선순환 무너져
엔젤 없는 벤처생태계
성공한 벤처 1세대, 안정적 사업에만 손 대 벤처기업 중 엔젤투자 받은 경험 1.9%뿐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1-②) 꽉 닫힌 돈줄, 꽉 막힌 창업

흔히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성공요인으로 특출난 아이디어를 꼽는다.

뛰어난 사업아이템으로 회사를 설립해도 금융투자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의 페이스북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지난 2000년대 초반 창립 초기 50만달러의 엔젤투자를 받은 페이스북은 2005년 최초 벤처캐피털(VC) 투자로 1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이후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2억4000만달러, 이후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IB)들로부터 15억달러를 투자받았다. '엔젤→VC→IB'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투자가 지금의 페이스북을 만든 셈이다.

■천사 없는 한국…꽉 막힌 '투자 선순환' 구조

벤처업계 전문가들은 아무리 날고 기는 저커버그라 해도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페이스북은 초기 창업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고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돈을 대겠다는 '비즈니스 엔젤투자'가 미국엔 줄을 선 반면 한국에는 전무하다. 이에 비즈니스 엔젤의 존재 여부가 한·미 창업생태계 성패를 좌우하는 최대 기준으로 지목되고 있다. 개인투자자인 엔젤시장조차 척박한 상황에서 글로벌 창업시장의 키를 쥔 비즈니스엔젤은 한국에서는 생소할 뿐이다.

엔젤투자란 기술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창업 초기의 신생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본을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뜻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비즈니스엔젤은 이미 벤처창업을 통해 성공을 거둔 창업자가 본인의 지분을 내다팔고 얻은 자금으로 성장성 있는 신생 스타트업을 골라 자금을 대는 투자자를 의미한다.

미국에선 100여만명의 천사(엔젤)들이 유망 벤처기업들을 골라 과감한 투자에 나서 첨단산업 육성의 밑거름을 이루고 있지만, 한국은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엔젤투자자들의 대부분은 '성공한 벤처사업가'들이다. 실제 미국의 엔젤클럽의 경우 넷스케이프의 창업자인 짐 클라크 회장, 마이크로소프트사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 등도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이들뿐 아니라 많은 벤처사업가들이 자신의 기업을 매각(M&A)하거나 기업공개(IPO)를 해서 벌어들인 자금을 새로운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상황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에선 벤처사업가라도 성공궤도에 진입하면 제 자리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선순환' 구조가 막혀 있는 셈이다. 실제 한국의 벤처 1세대들의 경우 새로운 투자에 나서지 않고 안주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소프트웨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지난 1983년 국내 대학생 벤처 1호, 소프트웨어 전문회사 1호로 설립된 비트컴퓨터다. 당시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현정 현 비트컴퓨터 회장이 450만원의 자본금과 직원 2명으로 호텔 객실에서 창업한 회사다. 기술력 하나만으로 창업에 성공한 스타트업이었던 비트컴퓨터는 지난 1997년 코스닥시장에 들어온 이후 특별한 투자에 나선 사례가 없다. 독특한 아이디어나 기술력이 아닌 안정적인 부동산임대업(비트인테크)에 투자했을 뿐이다.

또 다른 벤처 1세대인 넥슨(NEXON)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의 지주회사) 대표 역시 지난달 25일 경기 성남 넥슨 사옥에서 게임 제작 동아리 및 게임업계 지망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벤처 1세대들이 창업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뿐 아니라 다른 산업 부문에서 젊은 세대가 씨앗을 뿌리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양질의 토양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아직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반성과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한국 벤처기업 중 엔젤투자자로부터 투자받은 경험이 있는 곳은 1.9%에 불과한 수준이다.

■미래성장 대신 안정투자 매몰된 벤처캐피털(VC)

엔젤과 함께 스타트업의 양대 자금생명줄에 속하는 VC의 왜곡된 투자관행도 글로벌 창업기업의 출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VC나 모태펀드가 넉넉한 자금을 확보하고도 보수적인 투자전략에만 매몰돼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자금조달이 긴박한 스타트업에 대한 이들의 투자 비중은 30% 내외에 그친 실정이다. 나머지 자금은 '성공 가능성'이 입증된 중.후기 성장단계 벤처로 쏠린 형국이다.

스타트업에 잠재성장성 지표가 아닌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등 현실적인 기업평가 잣대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VC들도 도마에 올랐다. 미국, 일본 등 해외 VC들이 스타트업 발굴 때 기술력과 아이디어에 초점을 두는 반면 국내 VC들의 경우 상당수가 현재 매출이 전무한 상태이면 투자의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 VC들의 이 같은 모습은 지난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버블닷컴 때의 선례가 크게 작용했다. 당시 VC들은 소위 '묻지마 투자'를 통해 크게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수도권 소재 한 사립대학교의 창업보육센터에서 창업을 시작한 A대표는 1990년대 말 창업 직후 5년 넘게 매출이 없었다. 하지만 A대표는 당시 창업 환경과 관련해 "넘쳐나는 투자로 돈 걱정이 없던 시절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VC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의 스타트업을 찾아다니며 사장 얼굴만 보고 10억, 20억원씩 투자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닷컴버블 때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VC들의 의지가 현재 시점에 어울리지 않는 행태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고부가가치 기술력과 아이디어의 사업 연계성 등을 바탕으로 투자가치를 산정할 역량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체인식 모바일 플랫폼을 개발한 창업가는 "정부 기조에 따라 최근 들어선 바이오는 물론, 정보기술(IT), 반도체, 소재 등 다양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면서도 "그중 미래가치와는 무관한 곳에 투자해 낭패 보는 VC도 있고, 오히려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업이익은 어떻게 내는지'에만 급급한 투자가도 많다"고 전ㅍ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