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제조업 자부심과 고객의 니즈

이보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16 17:36

수정 2015.11.16 17:36

[기자수첩] 제조업 자부심과 고객의 니즈

지난 11일 73년 역사의 도자기 제조업체인 행남자기의 매각이 발표됐다. 매출 감소와 신사업 추진 및 자금조달 실패 등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73년 만에 행남자기의 주인이 바뀌게 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차분했다. 도자기업계의 어려움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도자기 매출 비중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혼수용 홈세트 판매가 급감했고, 식기 구매패턴도 저렴한 것을 사서 자주 바꾸는 것으로 달라졌다. 행남자기는 지난해 4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국내 도자기시장의 어려움은 "소비자와 시장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디자인을 중시하면서도 합리적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도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고가 전략을 택한 점이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도자기업계 종사자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발 빠르게 변화를 택하진 못했다. 그 이유를 묻자 "역사가 오래된 만큼 조직문화나 경영방침이 보수적이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도 커 처음 캐릭터 관련상품을 만들 때도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사이 소재는 다르지만 비슷한 디자인의 싼 제품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합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소비자와 엇박자를 내는 일은 토종 도자기업체에만 한정된 일은 아니다. 국내 중소.중견 제조업체 중 '품질경영'에 올인하는 기업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품질이 좋으면 가격이 비싸도 고객이 알아서 찾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자부심에 가끔은 의문이 든다. 품질이 아무리 좋다 해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나 가격대가 아니라면 선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빠르게 변하는 소비 트렌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다.

우직하게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정신은 좋다.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시대 변화와 흐름에 부응하면서 자부심도 지켜나가야 100년 혹은 200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행남자기는 도자기 공장은 계속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최대주주가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기 전이다.
앞으로 토종 제조업체에 이런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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