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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인디언을 찾아서] (3) 자랑스러운 인디언 고대문명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19 17:14

수정 2015.11.19 22:34

세대별 거주공간·집회 시설 등 갖춘 면적 8000㎡ 'D자형 주거단지' 건설
美 세계문화유산 9개 보유 이 중 5개가 인디언들이 건설
폭 10m 직선도로망 만들어 야간엔 횃불 가로등 사용
피라미드와 유사한 언덕 '흙둔덕'도 광범위하게 지어
메사버드의 절벽궁전
메사버드의 절벽궁전


김철 전 한양대 겸임교수
김철 전 한양대 겸임교수

인디언이 건설한 문명에 관해 이야기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야, 아즈텍, 잉카 등을 떠올릴 뿐 미국 본토 내에도 그 땅의 선주민인 인디언들이 건설한 찬란한 고대문명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록 그 숫자는 적지만 미국도 9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4개는 유럽인의 이주 이후 만들어진 역사적 기념물이며 나머지 5개는 원래의 땅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건설한 역사적 유적들이다.

■아나사지 문명

아나사지(Anasazi) 란 나바호족 인디언들이 현재 살고있는 이른바 '4-코너즈'(유타, 콜로라도, 애리조나, 뉴멕시코주가 만나는 지역) 주위에서 기원전 12세기 무렵부터 살기 시작한 고대 종족 또는 그들이 일군 문명을 일컫는 말이다. 아나사지라는 말은 나바호족 인디언의 말에서 나왔는데 '옛 사람들' '옛 푸에블로 사람들' 또는 '옛 적들'을 뜻한다. 아나사지족은 후일 푸에블로, 호피, 주니족의 선조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나사지 문명의 유적으로는 차코 캐니언(Chaco Canyon)과 메사 버드(Mesa Verde) 등이 남아 있다. 이 유적지 두 곳은 모두 미국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차코 캐니언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푸에블로 보니토(Pueblo Bonito)가 있다. 푸에블로 보니토는 오늘날의 대규모 아파트 주택단지와 비슷하게 세대별 거주공간은 물론이고 종교의식과 부족집회 등을 위한 시설을 모두 갖춘 잘 계획된 주거단지로 볼 수 있다. D자 형태로 이뤄진 이 시설은 면적이 8000㎡에 이르고 약 800개의 방을 가지고 있으며 최고 5층 높이로 건설됐다. 이 유적지의 사용기간은 기원후 828년부터 1126년까지로 밝혀졌다. 이 일대에 이런 유적지가 100개도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차코 캐니언에는 방사선 형태의 직선도로망이 잘 건설돼 있었는데, 총 길이는 100㎞에 달하고 그 폭은 거의 10m나 됐다. 야간에는 횃불 가로등까지 갖췄다고 한다. 모든 도로는 캐니언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으며 장애물이 있는 경우에도 우회하지 않고 거의 직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상업적 용도는 물론이고 종교적 목적에 많이 이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12세기 중 갑자기 이 지역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배경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가뭄 등 기상재해와 삼림자원 고갈로 인한 환경파괴 때문에 당시의 수많은 인구가 생존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해발 2600m의 고원지대에 자리한 메사 버드에는 기원후 450년 무렵부터 1300년까지 살았던 아나사지족이 남긴 4000여개의 유적이 모여 있다. 이곳 문명 역시 차코 캐니언과 마찬가지로 13세기 말에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로 종말을 고하게 되고 종족들은 여러 곳으로 이주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동쪽으로 이동해 미시시피강을 건너와 크리크족과 체로키족의 시조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주거 유적으로는 절벽궁전을 들 수 있는데, 이곳 벼랑의 후미진 곳에서 최고 4층 높이로 지어진 150개의 방과 15개의 지하 기도 시설을 발굴하였다. 또한 차핀 메사에 있는 가문비나무집도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주거 유적이다. 여기서 메사란 주변 지형이 침식과 풍화로 인해 깎여나감에 따라 홀로 남게 된 꼭대기가 평평한 수직 형태의 산들을 일컫는 말인데, 높이보다 꼭대기 마당의 길이가 더 짧을 경우에는 특별히 뷰트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스퀘어타워하우스, 롱하우스 그리고 발코니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시설이 확인됐다.

지금의 애리조나주와 뉴멕시코주에 걸쳐 있는 리오그란데강 지류에는 13~14세기 옛 아나사지를 떠난 민족들이 이주해 새로운 주거지를 많이 건설했다. 이 중 한 곳인 푸에블로 타오스(Pueblo Taos)에는 현재까지도 옛 모습이 잘 보존돼 있으며, 이 지역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아나사지 문명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지역 또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여기에 살고 있는 민족이 1680년 스페인 점령군에 대항해 대반란을 일으켰던 민족의 후손들이다. 또한 아코마 푸에블로에는 이들 문명의 후예들이 메사의 꼭대기 평지에 집을 지어 지금까지 800년 이상을 계속해 살아오고 있다. 이 지역은 미국의 국가기념유적지로 지정돼 있다.

■흙피라미드 문명

미시시피강과 오하이오강 유역 등 현재의 미국 땅의 동쪽 절반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에 오랜 기간 흙둔덕(피라미드와 유사한 언덕)을 건설하는 독특한 문명이 존재해왔다. 종래에는 루이지애나주에서 발견된 기원전 1500년께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버티 포인트(Poverty Point)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파버티 포인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보다 2000년이나 앞서 건설된 왓슨 브레이크(Watson Brake)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흙피라미드 문명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540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게 됐다. 특히 미시시피강 하류지역에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입하던 시기까지도 그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1539년부터 1542년까지 미국 남동부를 침략한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도 데소토를 비롯해 이 지역을 찾아왔던 유럽인들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흙피라미드 문명 유적지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파버티 포인트와 일리노이주 미시시피강가에 있는 카호키아 등이 있는데, 둘 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카호키아에는 약 80개의 흙둔덕이 있는데 이 중 몽크스 마운드(Monks Mound)가 가장 크다.
대체로 10세기 중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몽크스 마운드는 중앙아메리카 북쪽에서는 규모가 제일 큰 피라미드로 가로 291m, 세로 236m, 높이 30m이다. 밑면적은 이집트 피라미드와 비슷하며 멕시코의 테오티우칸에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더 크다.
피라미드 위에는 부족 추장의 거처로 보이는 높이 15m의 대형 목재 구조물이 더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철 전 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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