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여의도에서] '외제차'는 '수입차'가 되고, 우리는 '호구'가 됐다

[여의도에서] '외제차'는 '수입차'가 되고, 우리는 '호구'가 됐다

어린 시절 동네시장 어귀에는 수입산 물건들을 놓고 파는 자그마한 가게가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장난감 미니카부터 영어가 잔뜩 써있는 초콜릿과 과자들. 너무 달아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외제라는 이유로 나와 친구들은 그 초콜릿을 사랑했다.

오래 전 얘기지만 옛날에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건넬 때 "이거 물 건너온 거야"라고 한마디 하면 상대방이 반색을 하면서 받아드는 광경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외제'라는 단어에는 그 어떤 초월적이고 신성한 느낌이 스며들어 있었다. 외제를 쓴다는 것은 부의 상징이었고, 외제는 존재만으로도 국산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처렴 여겨졌었다.

점점 먹고살 만해지기 시작하면서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화장실 휴지부터 밥솥까지 외제를 찾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소니와 파나소닉, 아이와 등 일제 미니카세트를 자랑하는 친구 앞에서 삼성전자 제품인 '마이마이'가 창피해 슬그머니 책상 속에 밀어넣었던 기억은 제법 여러 명이 공유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외제 열풍의 정점은 '외제차'였다. 집에 일본산 코끼리 밥솥이 있다면 '잘먹고 사는 집'이었지만 외제차가 있는 집은 마치 인도 카스트제도의 '브라만'처럼 최상위 계급인 '부자'로 인정하는 게 사회적인 분위기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자동차 보급대수는 2000만대를 넘었고 현대·기아차가 해외의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한 지도 십수년이 넘었다. 신분의 상징이었던 '외제차'는 이제 '수입차'라는 말로 바뀌었다.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은 줄었고 웬만하면 살 수 있는 물건이 됐다.

외제차가 대중적인 수입차로 바뀌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수입차가 가까이에 둘 수 있는 물건이 되자, 우리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던 '부의 상징'에 대한 갈망이 더욱 크게 증폭된 것이다.

수입차의 평균 판매가격이 통관가격에 비해 거의 2배가량 비싸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판매 모델은 옵션을 줄이면서도 가격을 올리고, 소위 '깡통' 차를 팔아도 독일산 브랜드가 붙어 있으면 '역시 다르네'라는 찬사를 듣는다.

수입차들은 최근 감춰져 있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배출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은 '뻥클린', 엔진룸 화재가 잇따라 발생한 BMW는 '불의 전차'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시동꺼짐 현상으로 차를 직접 부수기까지 했던 벤츠는 결국 결함이 인정됐다.

우리는 차를 신분으로 본다. 바로 '베블런 효과'다.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은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신분사회가 무너진 이후 소비가 신분을 증명할 유일한 수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다녀온 영국과 독일은 해치백의 천국이었다. 자동차 왕국에 살고 있는 그들은 연비 좋은 모델을 싸게 사서 오랫동안 잘 타면 그만인 '도구'로서 차를 본다.

수입차는 허영이니 국산차를 사라는 얘기가 아니다.
현명하게 따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가 차를 계급으로 볼 때 이성보다는 감성의 부름에 따르게 된다. 스스로는 신분 상승의 쾌감을 느낄지 모르나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만만한 '호구' 하나가 더 걸려든 것뿐일 수도 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