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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이상한 쌀정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23 16:57

수정 2015.11.23 16:57

과잉생산 방치해 매년 재고 쌓여.. 3년 이상 묵히면 먹을 수 없게 돼
농민 눈치 보느라 감산 엄두 못내
[염주영 칼럼] 이상한 쌀정책

'불행히도' 올해 쌀농사가 대풍이다. 수확량이 432만t으로 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풍년을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쌀값이 폭락해 농민들이 괴롭기 때문이다. 산지 쌀값이 10% 이상 떨어졌다. 쌀값 하락분의 일부는 정부가 직불금(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 형태로 메워주지만 나머지 손실은 농가가 감수해야 한다.


정부도 울상이다. 쌀값이 떨어져 직불금 부담이 커졌다. 가격 안정을 위해 공공비축 물량도 늘려야 한다. 공공비축을 늘리면 보관비용이 늘어나는데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쌀 1만t을 보관하는 데는 연간 30억원 정도가 든다. 현재 비축미는 140만t으로 적정량의 두 배나 된다. 과잉재고 70만t을 보관하는 데는 연간 2000억원이 든다. 여기에다 올해 또 풍년이 들었기 때문에 내년에는 재고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낭비는 이것만이 아니다. 쌀을 오래 보관하면 쌀의 가치가 떨어진다. 보관기간이 길어질수록 맛과 영양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확 후 1년 이내의 신곡은 제값을 받지만 1년이 지나면 구곡(묵은 쌀)이 돼 값이 큰 폭으로 떨어진다. 승용차가 새 모델이 나오면 구식 모델 값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뿐 만이 아니다. 맛이 없기 때문에 밥쌀용으로는 팔리지 않는다. 가루로 빻거나 튀겨서 떡이나 과자를 만드는 재료(가공용)로 쓴다. 3년이 지나면 가공용으로도 못 쓴다. 3년 이상 묵은 쌀을 고미(古米)라고 하는데 냄새가 나서 식용으로는 쓸 수 없다. 양곡 창고에 이런 고미가 수십만t이나 쌓여 있다. '보이지 않는 손실'(장기 보관에 따른 쌀의 가치하락)은 '보이는 손실'(보관비용)의 몇 곱절이다.

고미의 처분 문제도 골칫거리다. 먹을 수 없다면 버려야 한다. 그러나 쌀을 버릴 수는 없다. 농업계 내부에서는 가축의 사료로 쓰자는 의견이 나온다. 그럴 경우 가격은 헐값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처분해 보관비용을 줄이는 것이 그나마 차선책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여의치 않다. 쌀을 가축에 먹인다는 발상이 쌀 한톨이라도 귀하게 여겼던 전통적인 국민정서에 어긋난다. 게다가 이 지경이 되도록 상황을 방치한 정부의 쌀정책 난맥상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 뒷감당을 해낼 자신이 없다. 정부가 고미의 사료화 결정을 쉬이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전자보다는 후자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쌀산업 정책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산한다. 둘째, 과잉 생산분을 3년 이상 묵혀 못 먹는 쌀로 만든다. 셋째, 못 먹는 쌀을 창고에 계속 보관하며 보관비를 들인다. 도대체 정부는 왜 이런 일을 할까.

이런 상황을 만든 근본 원인은 정부가 과잉생산·과잉재고 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쌀의 연간 소비량은 400만t 정도다. 우리나라는 매년 40만t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할 의무(MMA)를 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쌀 수입개방을 늦게 한데 따른 국제사회의 벌칙이다. 이를 빼면 적정 생산량은 360만t이다. 올해 생산량(432만t)은 이를 72만t이나 초과했다. 내년에는 고미가 더욱 늘어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쌀의 대북지원 재개를 요구하는 농민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귀한 쌀을 묵혀서 고미로 만드느니 굶주림에 떠는 북한 주민들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다.


쌀정책은 대수술이 시급하다. 그러나 정부는 농민들 눈치 보기에 급급한 나머지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장 내년에 10% 이상 감산하고 그 이후에도 소비 감소 속도에 맞춰 매년 1~2%씩 감산해나가야 한다. 쌀정책에 숨겨진 왜곡과 비효율을 언제까지 안고 갈 것인가.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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