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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브랜드와 자긍심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15 17:06

수정 2015.12.15 17:06

[여의나루] 브랜드와 자긍심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뉴욕시를 찾은 관광객 수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 많은 56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가치도 무려 613억달러(67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 그라운드 제로 등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필자에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9·11 이후 단결의 표상으로 각인된 'I ♥ NY'이라는 뉴욕시의 브랜드다. 뉴욕의 명성답게 전 세계인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뉴욕의 관광산업은 그저 그런 정도였다. 그런데 1977년 어느 그래픽 디자이너의 무료 도시 브랜딩 작업에 대한 반응이 당초 한두 달 정도 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뉴욕이 관광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빨간색 하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뉴욕만의 자랑거리이자 상징이 되었음은 물론, 라이선스 없는 오픈소스(무상로고)로 갖가지 상품 로고화되어 세계인의 찬사와 사랑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뉴요커들의 이 브랜드에 대한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최근 서울시가 확정한 새 도시 브랜드를 두고 말들이 많다. 대체적으로 요약하자면 'Hi Seoul'의 교체 이유와 새 브랜드인 'I SEOUL U'의 애매모호한 의미, 문법적 결함에 대한 지적이다.

'너와 나'가 공존하는 서울, 열정과 휴식을 나타내는 색깔 배열 등의 설명이 그 나름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문법적 잣대로 보면 어법이 맞지 않는 도시 브랜드도 여러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더구나 서울시장과 같은 당의 여러 히트 상품 브랜드 개발자인 홍보전문가까지 나서서 새 브랜드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필자는 그 이유는 새 브랜드가 서울 시민의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마치 노이즈마케팅처럼 활용하면서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서울시가 소통과 교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브랜드가 새로 나오면 생소한 느낌에 약간의 거부감과 논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서울시는 새로운 브랜드가 친숙해지고 널리 사용되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선정하는 서울 브랜드'라는 수식어를 쓰려면 서울 시민의 여론을 살피고 설득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공모 과정을 거쳐 선정하고 여론도 조사했겠지만 이렇게 논란이 커지는 마당에 형식상 절차적 정당성만 내세울 게 아니라 또 한 번의 여론 수렴 노력을 마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누굴 위한 새 브랜딩인가. 몇몇 언론사의 조사 결과를 빌리자면 기존의 'Hi Seoul'이 월등히 우위에 있는데도 서울시만 'I SEOUL U'를 고집하는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리고 이런 논란 속에서 탄생한 서울 브랜드가 과연 서울 시민에게 자긍심을 가져다줄 것인가.

열광적인 야구팬들의 관심 속에서 국내 유일의 돔구장이 개장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입에서 실망과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왜 없었겠는가마는 야구를 볼 만한 야구장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부지가 협소하고 너무 외진 곳이라 교통, 주차시설이 미비하고 관중석의 경사도도 가파르단다. 어느 야구전문가는 '일반 야구장에 돔을 씌운다고 돔구장이 되지 않는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얼마나 소통과 교감이 없었으면 이런 말이 나오겠는가. 그런 돔구장에 야구인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민주적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민주적이란 여러 의미를 갖고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여러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공통분모를 슬기롭게 찾아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 결과에 모두가 자긍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말로만 민주적이라 하지 말고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소통과 교감이 활발해져 우리 모두가 자긍심을 갖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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