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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희망 키우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05 16:43

수정 2016.01.05 16:43

[여의나루] 희망 키우기

항상 새해를 맞으면 우리는 새로운 희망, 새로운 기대를 갖게 된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이웃과도 덕담을 나누며 희망을 키운다. 부지런한 이들은 새해의 바람과 다짐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해 뜨는 동해를 찾기도 하고 꼭두새벽의 산을 오르기도 한다. 그다지 부지런한 축에 들지 못하는 필자는 어쩌다 그런 신년행사에 동참할 뿐이지만 새벽의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견디다 떠오르는 새해 첫 해를 보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 것만 같은 희망에 충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해의 덕담은 행복이나 건강을 빌기보다는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 같은 말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바야흐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단계에 와 있는데도 우리 사회의 물질에 대한 욕구는 오히려 더 강해진 모양이다.


새해 덕담뿐 아니라 사회의 관심사도 마치 경제만 좋으면 만사형통이라는 듯 당장의 경기활성화가 최우선 과제인 양하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 안목의 과학기술 정책이나 산업 구조조정같이 시간이 걸리고 인내를 요하는 과제는 관심 밖이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이나 진학양상도 돈 잘 버는 직종에 관련된 분야로 쏠리고 있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조차 가정을 꾸려 행복을 쌓아가는 삶의 과정이 아니라 계산과 손익비교에 따른 선택의 문제처럼 돼버렸다.

어느 사이 물질가치가 사회의 중심에 자리하여 사람됨과 예의도덕, 양보와 배려 등의 정신적 가치는 잊혀져 가는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갈등과 불안을 조장해 평화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더러 접하게 되는 마음 따뜻한 소식이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하고 있다. 벌써 16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전주의 어느 기부천사의 성금 희사 소식이나, 지뢰 도발로 인한 남북 간 대치국면에서 자진해 전역을 연기하고 군복무에 임한 젊은이들의 이야기. 출근길 교통사고 환자를 돌보려다 2차 사고로 순직한 고 정연승 상사의 사연(2015년 12월 국민대통합위원회 선정 '생활 속 작은 영웅' 중에서) 등….

비록 세간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사연들도 많지만 이들은 각박한 세상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의 싹을 심어주는 청량제다.

지난 주말 목욕탕에서 할아버지의 굽은 등을 밀어주는 아빠와 이를 빼꼼히 바라보는 천진한 꼬마의 3대(代) 가족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희망을 떠올렸다.

작아 보이지만(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의미 있는 사연들을 접할 때면 우리는 세상이 살아갈 맛이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새 기대를 얹게 되는 것이리라.

요즘 한 케이블방송사의 복고풍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당시 결코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골목골목 사람 냄새가 가득하고 인정이 느껴지는 그 시대가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하고 마음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지금의 세태가 각박하다는 방증이겠고, 그래서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진하게 드리워지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물질적인 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 간 교감, 서로 간에 오가는 인정과 믿음이 더 중요한 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기반이 마련돼야 삶에 대한 의욕이 충전되고, 그 위에 희망을 키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경제적 가치나 물질적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기보다 좀 더 사람 냄새 나는 사회, 이웃 간 인정이 오가는 따뜻한 사회, 남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있는 사회, 믿음과 신뢰가 두터워지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한 해가 되도록 희망을 키워 본다.

김대희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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