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각 당의 공약집을 살펴보던 중 몇 년 전 서울시가 추진하였던 '반값 식당'이 떠올랐다. 이 정책은 밥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선의(善意)를 앞세웠지만 지역 영세상인의 반발이 워낙 거세 결국 백지화되었다. 지역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반값 식당의 등장은 시의 예산으로 뒷받침되는 '덤핑'이며 불공정경쟁인 것이다. 만일 추진이 되었더라면 많은 영세상인들이 장사를 접어야 했을 수도 있다. 선거 때면 항상 불거지는 포퓰리즘 공약 논란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각 당의 공약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은 예산에 대한 고려가 없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일부 공약은 '반값 식당'의 사례와 같이 시장의 경쟁질서를 해쳐 오히려 중소기업 및 영세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느 당은 파견근로자에게 보다 높은 소득을 주기 위해 공공기관이 파견근로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였다. 정부 예산을 바탕으로 시장 수준보다 높은 급여를 제공하는 파견근로사업을 공공기관이 수행한다면 전체 파견근로업체 중 약 80%에 달하는 영세규모 업체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파견근로업체 수가 줄어 파견근로자를 써야 하는 중소기업은 심각한 인력난에 처할 것이다. 그렇다고 20만명에 달하는 파견근로자 모두를 공공기관이 채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부 근로자의 소득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선의가 가져올 여러 가지 부정적 파급효과가 고려되지 않은 정책인 것이다.
한편 각 당 공히 직간접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육성'도 유사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가치는 높지만 기존 시장에서 어떤 이유로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할 때 그 존재 의의가 있다. 만일 해당 상품 및 서비스가 이미 시장에서 공급되고 있을 경우 정부의 지원을 받은 사회적 기업이 시장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그 시장에 진입할 경우 기존 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생활에 꼭 필요한 상품 및 서비스이지만 시장가격이 너무 비싸 저소득층이 필요량을 소비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쿠폰 등을 발행하여 가격보조를 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인증하여 지원할 경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같은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벤처 창업 지원자금을 신청을 하였으나 채택되지 못한 후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전환하여 정부 지원을 받은 사례를 필자는 전해들은 바도 있다. 아마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해당 상품을 개발.판매한다는 명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상품은 이미 시장에서 공급되고 있던 상품으로 기존 업체들로서는 불공정경쟁인 셈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익히 알려진 경구(警句)가 있다. 선의가 초래할 의도치 않은 나쁜 결과를 조심하라는 경고이다. 관련하여 과거 많은 사례가 있었고 기본적인 경제논리만으로도 부작용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마다 이 같은 위험성을 가진 공약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쯤 되면 정책의 바탕에 깔린 선의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로 포장된 정치적 목적 달성의 수단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 표를 얻기 위해 장밋빛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 정치권의 생리(生理)라면 그 중에서 옥석을 구별하는 현명한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미래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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