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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DJ 상인정신을 아는가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25 17:21

수정 2016.04.25 17:21

경제에 걸림돌 안되려면 장사꾼의 현실감각 발휘해 국정에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염주영 칼럼] DJ 상인정신을 아는가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총선이 있기 전까지는 별문제 없었다. 그러나 총선 이후에 말이 달라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평가단이 이달 초 한국을 방문했다. 나흘간 머물며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과 연례협의를 했다. S&P는 이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해 발표할 예정이다.
평가단 관계자들은 연례협의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수한 재정건전성과 대외건전성, 우호적 정책환경 등 한국 경제의 장점들을 줄줄이 열거했다. 분위기가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쯤 지나 한국에서는 총선이 실시됐고 야권이 압승을 거뒀다. 무디스는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에 대해 "한국의 국가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평가를 내놓았다. 피치도 "한국 정부가 핵심 과제인 구조개혁을 실행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서비스 부문의 개혁 관련 법안들이 여소야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며 그에 따라 한국 경제에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왜 말이 달라졌을까. S&P와 무디스, 피치는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다. 글로벌 경제무대에서 이들의 평가는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외환위기 때 그런 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이들은 야당의 총선 승리가 한국 경제에는 악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왜 야당의 승리에 재를 뿌리고 나선 것일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경제 실정을 심판해달라고 호소해 승리를 이끌어냈다. 국민은 경제 악화의 책임이 야당보다는 여당에 더 있다고 보고 그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 결과 야당이 승리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병든 경제를 치유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렇게 보는 것이 3대 신용평가사의 판단이다. 여소야대 국회가 한국 경제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야권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이런 경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노동개혁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함정을 벗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자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그러나 역적 소리를 들을 각오가 없다면 추진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과제다. 유권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에게 기득권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했을 때 국제사회는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거야(巨野)의 탄생이 여기에 장애물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두 야당은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야당 총재 시절 상인정신을 강조했다. 좋은 정치를 하려면 '서생의 문제의식'과 함께 '장사꾼의 현실 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장사꾼의 현실 감각'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실용주의 정신이다. DJ는 대통령 재임 시절 농민들을 설득해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를 성사시켰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야권도 노동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동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상인정신이다. 이념의 형식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한 결단을 제때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민생을 돌보는 것이다.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한다는 것은 5000만 국민의 민생을 책임지는 것이다. 야당은 지난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경제와 민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책임을 추궁했다.
이제는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도 여당과 똑같이 경제와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 섰다. 두 야당은 경제와 민생을 책임질 수 있는가. 객관적이고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의 대답은 아쉽게도 노(NO)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권의 무력화와 야권의 무책임이 결합하면 경제는 '산 넘어 산'이 되지 않을까. 야당이 수권 의지가 있다면 이 점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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