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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재무학회칼럼] 융합의 리더십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21 17:13

수정 2016.10.19 13:41

[한미재무학회칼럼] 융합의 리더십

지난주 20대 국회 개원식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화합과 협치'에 걸맞은 '정부와 국회의 소통'을 강조했다. 지극히 당연한 내용임에도 모두가 이를 일단 반기는 까닭은 총선 전후를 거치면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청와대 안팎의 기류 때문인 듯하다. 더구나 지금까지 보아온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에 비추었을 때 국회를 향한 화합과 존중을 언급함에 있어서랴.

그러나 산적한 국내외 정치·경제 현안들로 과부하 상태인 한국호(號) 선장의 대국민 담화에서 기대되는 끈질긴 창조적 고민, 겸허한 성찰의 지혜, 그리고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려는 의지가 엿보이지 않는다. 반세기 가까이 외국에 살면서 대통령의 깊은 속내를 읽어내는 감각이 무디어진 필자의 탓이라고 믿고 싶다.

8년 전에 기고했던 칼럼이 기억에 떠오른다. 당시 정국의 난맥상을 풀어내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지가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로 알려졌다.
본인의 리더십을 따라주면 한국 경제를 일류국가 대열에 진입시킬 자신이 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불투명한 경제전망을 지속시키는 바람에 국민들의 초초한 마음이 정국을 꼬이게 했지만 기다려주면 반드시 이루어 내겠다는 내용이다. 삶과 정치 경력에서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견뎌낸 성공적 최고경영자(CEO)의 면모가 돋보였지만 이 전 대통령은 창조적 고민과 겸허한 성찰이 아쉬웠던 지도자이기도 했다.

지금은 2008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8년 전 이 전 대통령의 '사고의 틀'을 거의 답습하고 있다. 정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상황이 매우 불리하게 다가왔고 주변이 도와주지 않아서 어렵다는 내용이다.

6월 초 모처럼 참석한 민간금융위원회의는 정부의 '산업·기업 구조조정안'에 담긴 정책들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조선·해양업의 구조조정 방향을 직접 듣고 발제 자료를 살펴보니 기업과 채권단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은 강조하면서도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거나 해당 산업의 큰 그림을 그린 뒤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박 대통령의 연설이 미래를 향한 방향 제시를 할 수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생각의 폭을 넓히려는 끈질긴 창조적 고민과 겸허한 성찰의 지혜가 연설의 내용에 묻어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국민의 감동과 이해를 이끌어내려면 예컨대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아이디어가 본인의 '창조적 정치 스타일'로도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했는지 살필 일이다.

1980년대 후반 풀브라이트재단 초청으로 서울대에서 1년간 강의하면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십 스타일'을 소개한 적이 있다. 과거지향, 현재지향, 미래지향을 뛰어넘는 융합지향의 리더십 스타일이다. 대통령의 리더십 방향과 철학은 아직도 융합지향 이전에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 대다수가 지도자들에게 주문하는 양보와 타협, 설득을 통한 동의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현실적인 정치력의 향상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정치력의 바탕이 되는 융합지향의 정치철학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이를 얼마나 부단히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느냐는 것이다.

융합지향의 출발점은 통섭의 이론과 그 뿌리를 같이한다.
세월호 사태를 '퍼펙트 스톰'으로 인식하고 국민적 대토론을 제안했던 필자는 한국호의 선장은 물론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자들에게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것은 21세기 국가 발전전략에 걸맞은 주제들을 체계적으로 정해 국민적 합의와 이해를 이끌어내기 위해 융합지향의 국민적 대토론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개헌, 통일, 정의로운 경제, 청년실업 등을 주제로 하면 될 것이다.

김용헌 美 신시내티대학교 경영대 교수

■약력 △76세 △숭실대 △서울대, 미국 버지니아공대 경영학석사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영학박사 △서울대 풀브라이트 교수 △한미재무학회 초대 회장 △한미경제학회 회장 △신시내티대학교 경영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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