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가습기 살균제 사고' 등 업체 상대 손배소, 판결 없는 이유는?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18 15:09

수정 2016.09.18 15:09

지난 8월말까지 확인된 피해자 4486명,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여러 개별 집단으로 나뉘어 정부와 업체를 상대로 기약 없는 소송전에 나서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고가 불거진 지 5년, 그러나 판결에 이른 사건은 단 1건도 없다.

■소송 피해자 잇단 취하..합의내용은 비밀
1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옥시와 홈플러스, 롯데쇼핑 등을 상대로 제기돼 이달 6일 선고를 앞두고 있던 손해배상 소송이 당사자 사이 합의로 중단됐다. 정확한 합의금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법이 정한 수준보다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바른 백창원 변호사는 “합의가 되는 것은 판결로 하면 (업체가 제안하는) 그 금액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닌데다 위자료도 낮아 법원 입장에서 판결보다 조정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옥시 등 가해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낸 피해자 상당수가 합의를 통해 소송을 취하했다. 지금까지 단 1건의 판결도 나오지 않은 이유다.

가해업체가 적극 합의에 나서는 것은 배상판결이 선례로 남을 경우 전체 배상액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합의조건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데다 앞으로 어떤 민·형사상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약정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피해자모임 등에 따르면 옥시를 비롯한 가해 업체들은 합의과정에서 이런 조건을 요구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합의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부 피해자가 업체와 합의해도 다른 피해자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

여당 추천 전문가로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위에 참석한 백대용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변호사는 “올해 초 이전에 합의한 사람들과 옥시가 배상안을 발표한 후 합의한 사람들 사이에 (배상금액) 차이가 많이 난다”며 “이번 국정조사에서도 (먼저 합의한 피해자들이) 기망(허위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것)을 당해 낮은 금액에 합의한 것으로, 옥시 배상안이 기존에 합의한 사람들에게도 적용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합의한 경우에도 문제를 다시 제기할 수 없도록 해 온전한 피해구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집단소송, 징벌적 손배소 목소리 커져
전문가들과 피해자모임은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백대용 변호사는 “우리 법과 제도가 피해 구제에 상당히 미흡하고 부족하다”며 “기업이 자발적으로 해주지 않는 이상 피해자들이 배상받기가 어려운만큼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같은 사건은 기업이 처벌받아도 피해를 본 국민은 받는 게 없다”며 “피해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 도입이 바람직하다는 데 국제적인 공감대가 마련돼 있다”고 덧붙였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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