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초이노믹스 족쇄를 풀어라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19 17:09

수정 2016.09.19 17:09

실세 최경환 눈치 보느라 LTV·DTI 비율엔 손도 못대
당사자가 출구 터주길
[곽인찬 칼럼] 초이노믹스 족쇄를 풀어라

나부터 솔직해지자. 2년 전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초이노믹스의 기치 아래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를 풀었을 때 박수를 쳤다. 나른한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화끈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봤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고삐를 풀면 부작용이 따른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은행 문턱을 낮추면 당연히 가계부채는 늘게 돼 있다. 그때 LTV 비율은 70%, DTI 비율은 60%로 넓어졌다. 그러나 '한여름에 겨울 옷'을 입은 부동산시장을 뜯어고쳐 경기를 살리겠다는 말에 혹했다.


그 뒤 나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경고를 애써 외면했다. 경기 부양에 따르는 불가피한 현상이려니 여겼다. 나는 초이노믹스를 시간싸움으로 봤다. 경기가 먼저 살아나면 빚 이야기가 쏙 들어가지 않을까 기대했다. 현실은 달랐다. 경기는 몇 년째 죽을 쑤는 중이다. 반면 빚에 대한 공포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증폭됐다. 적어도 빚에 관한 한 초이노믹스는 실패다. 급기야 팬을 자처하던 나까지 생각을 바꿔 먹었다.

초이노믹스는 뜨거운 감자다. 원작자는 정치판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경제철학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감히 아무도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총선 때 '진박 감별사'로 활약한 최경환 의원의 위상은 대우조선 청문회 때 드러났다. 여소야대 정국의 야당의원들조차 그를 증인으로 세우지 못했다. 그러니 누가 감히 건드릴쏘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순둥이' 유일호 부총리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초이노믹스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한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겉돌 수밖에 없다. 알맹이 LTV.DTI 비율은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1차 대책, 곧 안심전환대출은 부채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변동금리에 이자만 내는 거치식 대출을 고정금리에 원리금을 함께 갚는 방식으로 유도했다. 2차 대책은 대출 심사를 담보에서 소득 중심으로 깐깐하게 바꾼 게 골자다. 수도권은 올 2월, 지방은 5월부터 이 기준을 적용했다. 3차는 지난달 나온 8.25 대책이다. 주택 공급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그랬더니 정부가 되레 집값을 부추긴다고 난리다.

줄줄이 대책을 내놨지만 별 효과는 없다. 지난 2013년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2015년 1200조원 벽을 뚫었다. 대외적으로 가장 감추고 싶은 통계도 가계부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9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부채왕국' 미국.일본보다 더 높은 수치다. 가처분소득 대비 비율도 주요국 중 가장 나쁜 편에 속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에서 "2017년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지금보다 5%포인트 낮추겠다"고 말했으나 '미션 임파서블'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난감할 것이다. LTV.DTI 비율을 풀고 죄는 것은 금융위의 권한이다. 하지만 섣불리 나섰다간 경칠 각오를 해야 한다. 전임 신제윤 위원장은 당초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 금융규제를 푸는 것에 탐탁잖은 반응을 보였으나 '보스' 최경환의 기세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바통을 이어받은 임 위원장이 저간의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LTV.DTI는 손대지 않는다"는 말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하는 것이다.

결자해지, 결국 최경환 의원이 풀어야 한다. 가계빚 풍선이 터지는 걸 막으려면 LTV.DTI 규제를 다시 조일 수밖에 없다. 쉬운 일은 아니다.
초이노믹스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 경제와 개인의 공명심 가운데 뭣이 중헌가. 지금이라도 최 의원이 임 위원장한테 전화 한 통 넣기를 고대한다.
며칠 늦었지만 임 위원장에겐 평생 잊지 못할 추석 선물이 될 것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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