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 걸음] 네이버에서 희망의 싹을 본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26 17:03

수정 2016.10.26 17:03

[이구순의 느린 걸음] 네이버에서 희망의 싹을 본다

정보기술(IT) 부서 기자로 생활하는 동안 미국 기업들을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노력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부러운 존재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애플. IT산업을 넘어 세계의 전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의 기술기업들. 시장 규모, 인재의 다양성, 기술적 완성도, 정부의 간섭…. 모든 면에서 그들은 우리 IT기업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풍요로운 환경을 가졌다. 이 때문에 '성공'이라는 결과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진정 부러운 것은 그들이 매년 개최하는 개발자대회다. 그들이 만들고 가꾸는 생태계다.
세계 IT 개발자들에게 MS의 빌드, 구글의 I/0, 애플의 세계개발자대회(WWDC)는 연중 최대 행사다. MS, 애플, 구글이 자신들의 사업방향과 서비스철학을 개발자들과 공유하고 기술개발 방향을 제시하는, 개발자를 위한 행사다.

기술기업들은 개발자대회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철학을 설명한다. 그 철학을 공유한 개발자들은 각자 창의적 서비스와 기술을 개발한다. 기술기업과 개발자가 같은 철학의 서로 다른 상품으로 시너지를 내는 것. 이것이 생태계다. ‘세기의 천재'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연설은 대부분 WWDC에서 개발자들에게 설명한 애플의 철학이다. 이 철학을 공유한 개발자들이 거대 애플 생태계의 실체다. 완성품 제조회사와 하청업체로 이뤄진 국내 산업구조에서는 낯선 모양새다.

그래서 부러웠다. 기술기업이라면 자신의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기술기업의 생존법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그런 기술기업을 찾을 수 없었다. 들키지 않으려 마음속 깊이 감춰뒀던 부러움을 올해 네이버의 개발자회의 '데뷰'가 풀어줬다.

미안하지만 올해로 9회째나 된다는데 그동안에는 딱히 기억에 남는 행사가 없다. 그저 네이버의 사업설명회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는 눈이 번쩍 뜨였다.

개발자들도, 네이버도 '데뷰'를 대하는 모습이 예년과 다르다. 이해진 의장이 직접 나서 네이버의 방향과 기술철학을 설명했고,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사업방향을 내놨다. 개발자들도 올해 '데뷰'에서는 함께할 '파트너' 네이버를 봤다고 평가한다. '아! 우리도 개발자들과 함께하는 정통 기술기업이 뿌리를 내렸구나' 생각이 들어 혼자 몰래 흥분했다.

온통 어렵고 우울한 얘기들뿐이다. 세계 경제는 어렵고, 자동차·휴대폰·반도체 수출에 의존하던 우리 경제는 더 이상 상승곡선을 그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 휴대폰, 반도체의 대체산업을 찾아내야 한다는 절박감도 커진다.

이럴 때 확 달라진 '데뷰'를 만들어낸 네이버가 보인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긴 하지만, 희망의 싹이 보인다. 곧 꽃을 피울 것 같은….

"기억 속엔 꼬맹이 모습만 있었는데, 어느새 번듯한 청년으로 자랐더라. 이제 남의 집 성공한 아들들 안 부러워해도 되겠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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