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완장, 그거 함부로 차지 마라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12 17:19

수정 2016.12.12 17:19

숙종때 정파간 보복 되풀이..살벌한 정치는 현재진행형
거들먹거리는 순간 추락
[곽인찬 칼럼] 완장, 그거 함부로 차지 마라


조선 경종(재위 1720∼1724년)은 장희빈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집권 노론은 허약한 경종 대신 이복동생 연잉군을 밀었다(연잉군은 나중에 영조가 된다). 소론이 이 틈을 파고 들어 경종 편에 섰다. 이때 영의정.좌의정 등 노론 4대신은 물론 수십명이 삭탈관직되고 유배형을 받았다. 이를 신축환국이라 한다.

보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론은 남인 서얼 출신 목호룡을 시켜 역모를 일러바치게 한다.
목호룡은 노론 명문가 자제들이 환관, 궁녀들과 결탁해 '3급수'(三急手)로 왕을 죽이려 했다고 고변한다. 첫째 대급수는 자객을 궁에 침투시켜 왕을 살해하는 방법이다. 둘째 소급수는 궁녀와 내통해 음식에 독약을 타는 방법이다. 셋째 평지수(平地手)는 숙종(경종의 아버지)의 전교를 위조해 경종을 쫓아내는 방법이다.

원로 역사학자 이성무에 따르면 "3급수는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사건의 실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애매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4대신은 끝내 죽음을 면치 못했다. 노론이 정권을 잡은 후 최대의 참변이었다('단숨에 읽는 당쟁사 이야기').

조선은 환국(換局), 곧 정권교체기 때마다 피가 흘렀다. 숙종 때 특히 심했다. 숙종 6년(1680년) 남인이 대거 실각하고 서인이 득세했다(경신환국). 9년 뒤 남인이 정권을 재탈환할 땐 서인의 영수이던 송시열까지 사약을 받았다(기사환국). 서인은 이를 갈았다. 그로부터 5년 뒤 재집권에 성공한 서인은 남인 정적들을 박살 낸다. 정신적 지주이던 송시열도 복권시켰다(갑술환국). 이성무에 따르면 "남인들은 기사환국 때보다 훨씬 많은 수가 처벌되었다…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해 두 번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조선의 정치는 살벌했다. 여차하면 목숨이 날아갔다. 현대 정치에서도 그 흔적을 본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쫓겨났고, 박정희 대통령은 총탄에 맞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전두환 대통령은 설악산 백담사로 유배됐고, 노태우 대통령은 철창에 갇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와대에 사실상 '연금'된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다. 유구한 당쟁사에 비춰볼 때 박 대통령도 무사히 권좌에서 내려오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탄핵 정국의 '사이다 스타'로 떠오른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가 청와대를 나서는 순간 수갑을 채워 구치소로 보내 처벌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백년 전 환국 시대의 난타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국회의 탄핵안 찬성률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렇다고 야당이 지나치게 우쭐하지 않길 바란다. 완장 찬 점령군처럼 행세해선 곤란하다. 정치에서 절대 승자란 없다. 어느 누가 '폐족' 친노의 부활을 점쳤던가. '신흥 폐족' 친박이 이대로 끝장이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완장은 양날의 칼이다. 소설가 윤흥길은 장편 '완장'에서 우리 사회의 빗나간 권력의식을 고발한다. 땅투기로 돈푼깨나 번 졸부 최 사장은 저수지 감시권을 동네 한량 종술에게 맡긴다. 완장을 찬 종술은 갑자기 사람이 달라져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지만 결국 주인한테 쫓겨나고 만다. 이 나라에서 제일 큰 완장을 잘못 휘두른 이는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다.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 완장을 하루라도 빨리 제가 차겠다고 욕심 부리는 이들이 언뜻 보인다. 그러다 큰코 다친다.
역사가 그 증인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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