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30년 가는 정책을 짜라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09 16:54

수정 2017.05.09 16:54

정권사업은 5년 단명이 숙명
자원외교.창조경제 행방불명
긴 호흡으로 나라 이끌어야
[곽인찬 칼럼] 30년 가는 정책을 짜라

길어봤자 임기 5년이다. 그런데도 대통령들은 욕심을 부렸다. 5년 안에 나라를 통째로 바꿀 것처럼 요란을 떨었다. 결과는? 대통령표 정책의 유통기한은 채 5년을 넘기지 못했다. 노무현표 종합부동산세는 흔적만 남았다. 이명박표 자원외교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박근혜표 창조경제는 되레 제 발등을 찍었다. 이제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적어도 10년, 길게는 30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짜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은 틀렸다. 대통령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청와대 참모진 임명 말고는 거의 없다. 총리, 장관도 제 뜻대로 고르지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2004년 4월 총선에서 크게 이겼다. 여론은 대통령을 심판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을 심판했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끝내 국회를 이기지 못했다. 오죽하면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을까. 그마저도 퇴짜를 맞았지만. 노 대통령은 사방에 적을 만들었다. 유권자들은 그런 노무현정부에 D학점을 줬다. 2007년 대선에서 보수 이명박 후보가 진보 정동영 후보를 더블스코어 차이로 누른 게 증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당 과반수의 이점을 누리며 출발했다. 그러나 뾰족한 성과는 없었다. 국회법 60% 룰이 발목을 잡았다. 경제활성화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여의도를 향해 '레이저'를 쏘았지만 국회는 꿈쩍도 안 했다. 되레 작년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줬다.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은 이때 씨앗이 뿌려졌다.

우리만 이런 게 아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의회 장벽에 가로막혀 쩔쩔 맨다. 집권 공화당은 상.하원을 모두 지배한다. 그러면 대통령과 의회가 배짱이 맞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려던 예산도 따내지 못했다. 요즘 트럼프는 행정명령으로 통치한다. 의회 입법권을 우회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행정명령은 법원이 불법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끝장이다. 이슬람 이민을 제한하는 명령이 그 짝이 났다.

새 대통령은 아예 정권 사업은 벌일 생각조차 않는 게 좋다. 어떤 좋은 정책도 정치색이 묻으면 5년 단명이 운명처럼 다가온다. 훗날 역사에서 훌륭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으려면 숨이 긴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는 '대선후보들에게 드리는 경제계 제언'을 발표했다. 상의는 '새정부 신드롬'을 경계했다. 튀는 정책을 펴려고 애쓰지 말라는 얘기다. "정책 시계는 5년이 아니라 10년, 30년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도 호흡이 긴 사업계획을 짤 수 있다.

퍼주기 대선공약은 잊어라. 솔직히 대통령 공약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점이 많다. 시장.구청장 후보가 할 자잘한 약속을 대선후보가 했다. 대통령은 저출산, 서비스산업 혁신처럼 장차 나라 운명을 바꿀 큰 정책에 집중하는 게 옳다.

정책이 힘을 받으려면 국민통합이 필수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전임 백인 대통령을 부통령으로 기용했다. 백인 장관도 여럿 임명했다. 만델라는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에 항거하다 27년을 감옥에 갇힌 인물이다. 하지만 통합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만델라가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는 이유다. 새 대통령에게 두 가지를 당부한다.
국민통합과 30년짜리 정책. 5년 뒤 박수 받으며 퇴장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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