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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재무학회칼럼] 나라다운 나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06 16:47

수정 2017.06.06 16:47

[한미재무학회칼럼] 나라다운 나라

새 정부의 국무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인준을 받았지만 아직도 세간에는 다수 국무위원 후보자의 검증 기준 충족 여부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위장전입이 문제되자 청와대가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는데, 2005년 이후 위장전입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후보에서 배제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민등록법상 위장전입은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지가 다른 경우에 해당된다. 필자는 현재 연구년으로 미국에 거주 중인데, 출국 이전에 동사무소에 문의했더니, 주민등록 말소보다는 부모님댁으로 주소지를 옮기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하여 별 생각 없이 그대로 했는데, 이번에 법을 자세히 보니, 이 또한 위장전입에 해당함을 알게 되었다. (*해외 체류자에 대한 예외 규정은 금년 말부터 시행예정이다*)

검증 기준의 현실화에 대한 논의는 매 정부 출범 시마다 반복되는 일이라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나라다운 나라'의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우리 경제 수준이 낮았던 시절에는 1인당 국민소득으로 국가의 선진화 정도를 단순화해서 이해한 적이 있었다.
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을 하면서 각 참가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전 국민에게 친절히 알려 줬던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러나 지난 겨울 광장에서 울려 퍼진 '이게 나라냐'는 울분은 낮은 1인당 GDP에 대한 분노가 결코 아니다. 국민들의 분노는 바로 형식적인 제도와 실제적인 규범이 일치하지 않는 데에 기인한다.

규범(norm)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지킬 것으로 요구되는 기준이며 이를 어길시 공식, 비공식적 제재가 뒤따른다. '나라다운 나라'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단일한 규범이 적용되며, 이를 어길시에는 누구나 동일한 제재를 받는다. '나라답지 못한 나라'에서는 우선 대상에 따라 규범 위반에 대한 제재가 다른데, 국민들이 분노했던 건 바로 이 점이다.

또한 '나라답지 못한 나라'에서는 단일 규범체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형식적인 규범과 실질적인 규범에 괴리가 있다. 실질적인 규범은 일반국민이 평소에 지키는 기준이다. 소위 '관행'으로 일컬어지는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상당수의 '관행'은 엄밀히 따지면 형식적으로는 위법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걸리지만' 않으면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심지어 '걸리는' 사람들도 본인이 위법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제재를 달게 받겠다기보다는 '재수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일반 국민들은 '관행'을 실질적인 규범으로 인식하고 생활한다. 특수활동비를 봉급의 일부처럼 받았던 청와대 공무원들도, 돈봉투 만찬을 열었던 검사들도 나름대로는 해당 조직의 '관행'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규범 위반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재수 없어서'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형식적 규범이 엄격히 적용되는 대상이 있다. 바로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혹독한 수준의 형식적 규범 충족을 요구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형식적 규범보다는 실질적 규범에 맞춰 생활하다 보니, 어느 정부에서도 형식적 규범을 온전히 충족하는 후보자를 찾기가 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도덕적인 기준을 일반 국민에 비해 높게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간의 혹독한 검증 과정은 고위 공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잠재적 후보군으로 하여금 사회 생활 초기부터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하도록 유도한 긍정적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형식적 규범이 불합리하다면, 이를 개선하여 형식적 규범과 실질적 규범간의 간극을 최대한 축소시키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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