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대북정책 '영점조준' 다시 해야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09 17:11

수정 2017.08.09 17:11

北, 베를린 구상에 묵묵부답.. '짝사랑'으로 그칠 공산 커져.. 분단고착 막을 새 전략 필요
[구본영 칼럼] 대북정책 '영점조준' 다시 해야

한반도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북한이 지난달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도 빛이 바랬다. 남북 군사당국자 회담에도,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에도 북한은 끝내 불응했다.

남북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욕 자체는 높이 살 만하다. 다만 북한이 동승할 기미가 없어 문제다.
5일 유엔 안보리는 강력한 새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중국은 미국의 통상압박을 피하려 찬성표를 던졌지만, 아세아지역안보포럼(ARF)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난 왕이 외교부장은 고자세였다. "양국 관계에 찬물" 운운하며 한국의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만 문제 삼았다.

결국 미.중 간 '북핵 밀당' 속에 우리는 조수석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이 핵개발을 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북 핵.미사일은 협상용"이라고 규정했었다. 그러나 한낱 '소망적 사고'에 불과했다. 북한의 핵 폭주가 금지선에 다가선 현 시점에 보면 말이다. 오죽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이 핵 위협을 계속하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격정을 토로했겠나.

북한이 그저 경제적 반대급부를 챙기려 핵 개발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면? 만일 남한을 '핵인질' 삼아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세습체제를 지키려는 게 진짜 속내라면? 현 정부는 노무현정부 시절 정상회담의 추억은 빨리 잊는 게 나을 게다. 노 전 대통령은 "모든 것 깽판 쳐도 남북관계만 잘되면 된다"며 이를 추진했다. 북핵에 대해 토를 달지 않고 대규모 경협을 하겠다는 약속어음을 끊어준 게 10.4선언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즌 2' 격인 현 정부 출범 이후 북의 행태를 보라. 석 달도 안 돼 일곱 번이나 미사일을 쏘아댔다. 두 번은 ICBM급이었다. 따스한 햇볕만 쪼이면 북이 '핵갑옷'마저 벗을 것이라는 기대는 미신임이 드러났다. 예견할 수 있었던 결과다. 개방이 진척될수록 북한 주민들이 주체사상이니 백두혈통이니 하는 신화의 허구성을 알아차릴까 봐 두려운 세습정권의 속성을 직시했더라면….

북한은 9일 "화성12형 미사일로 괌 포위사격 작전을 검토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는 협상을 하더라도 미국과 할 테니 "남조선은 빠지라"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청와대 참모들이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방법을 논의했다니 당국 간 대화에 대한 현 정부의 조급증이 엿보인다. 하지만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는 짝사랑은 대개 짝사랑으로 끝난다. 지금은 문재인정부가 대북정책을 다시 '영점조준'할 때다. 국제사회와의 흐름과 동떨어진 북핵 해법은 헛수고에 그칠 수 있어서다.

북한의 잇단 어깃장으로 '베를린 구상'은 기로에 섰다. 김정은의 핵질주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김정일 정권 때 짠 알고리즘으로 북핵 문제를 풀 순 없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다녀온 통독의 현장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역대 서독 정부는 동독과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기실은 동독 사회주의 정권보다 동독 주민의 변화를 더 기대했다.
동독 학생들의 서독 수학여행비까지 아낌없이 지원했지만, 우리의 개성공단 같은 대규모 경협은 자제한 게 그 방증이다.

서독의 이런 '작은 발걸음 정책'에서 교훈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당국 간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의 태도에 초조해할 이유도 없다.
문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에는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한 분단 고착화를 막을 새 버전의 구상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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