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베를린 구상에 묵묵부답.. '짝사랑'으로 그칠 공산 커져.. 분단고착 막을 새 전략 필요
한반도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북한이 지난달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도 빛이 바랬다. 남북 군사당국자 회담에도,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에도 북한은 끝내 불응했다.
남북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욕 자체는 높이 살 만하다. 다만 북한이 동승할 기미가 없어 문제다. 5일 유엔 안보리는 강력한 새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중국은 미국의 통상압박을 피하려 찬성표를 던졌지만, 아세아지역안보포럼(ARF)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난 왕이 외교부장은 고자세였다. "양국 관계에 찬물" 운운하며 한국의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만 문제 삼았다.
결국 미.중 간 '북핵 밀당' 속에 우리는 조수석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이 핵개발을 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북 핵.미사일은 협상용"이라고 규정했었다. 그러나 한낱 '소망적 사고'에 불과했다. 북한의 핵 폭주가 금지선에 다가선 현 시점에 보면 말이다. 오죽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이 핵 위협을 계속하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격정을 토로했겠나.
북한이 그저 경제적 반대급부를 챙기려 핵 개발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면? 만일 남한을 '핵인질' 삼아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세습체제를 지키려는 게 진짜 속내라면? 현 정부는 노무현정부 시절 정상회담의 추억은 빨리 잊는 게 나을 게다. 노 전 대통령은 "모든 것 깽판 쳐도 남북관계만 잘되면 된다"며 이를 추진했다. 북핵에 대해 토를 달지 않고 대규모 경협을 하겠다는 약속어음을 끊어준 게 10.4선언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즌 2' 격인 현 정부 출범 이후 북의 행태를 보라. 석 달도 안 돼 일곱 번이나 미사일을 쏘아댔다. 두 번은 ICBM급이었다. 따스한 햇볕만 쪼이면 북이 '핵갑옷'마저 벗을 것이라는 기대는 미신임이 드러났다. 예견할 수 있었던 결과다. 개방이 진척될수록 북한 주민들이 주체사상이니 백두혈통이니 하는 신화의 허구성을 알아차릴까 봐 두려운 세습정권의 속성을 직시했더라면….
북한은 9일 "화성12형 미사일로 괌 포위사격 작전을 검토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는 협상을 하더라도 미국과 할 테니 "남조선은 빠지라"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청와대 참모들이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방법을 논의했다니 당국 간 대화에 대한 현 정부의 조급증이 엿보인다. 하지만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는 짝사랑은 대개 짝사랑으로 끝난다. 지금은 문재인정부가 대북정책을 다시 '영점조준'할 때다. 국제사회와의 흐름과 동떨어진 북핵 해법은 헛수고에 그칠 수 있어서다.
북한의 잇단 어깃장으로 '베를린 구상'은 기로에 섰다. 김정은의 핵질주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김정일 정권 때 짠 알고리즘으로 북핵 문제를 풀 순 없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다녀온 통독의 현장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역대 서독 정부는 동독과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기실은 동독 사회주의 정권보다 동독 주민의 변화를 더 기대했다. 동독 학생들의 서독 수학여행비까지 아낌없이 지원했지만, 우리의 개성공단 같은 대규모 경협은 자제한 게 그 방증이다.
서독의 이런 '작은 발걸음 정책'에서 교훈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당국 간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의 태도에 초조해할 이유도 없다. 문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에는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한 분단 고착화를 막을 새 버전의 구상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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