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 재산적 가치는 얼마?

최수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08 09:48

수정 2017.10.08 09:48

원본, 보존상태 양호하면 1조원 웃돌아
내용 결손 및  화재로 인한 훼손 가능성 높아
학계 일부는 원소장처 의혹 제기
지난 7일 울산에서 열린 훈민정음 해례본 관련 학술대회에서 상주본에 대한 재산적 가치에 대해 의견을 밝힌 참가자들. 사진 왼쪽부터 김영복 위원, 김슬옹 원장, 성낙수 외솔회 회장, 이상규 교수
지난 7일 울산에서 열린 훈민정음 해례본 관련 학술대회에서 상주본에 대한 재산적 가치에 대해 의견을 밝힌 참가자들. 사진 왼쪽부터 김영복 위원, 김슬옹 원장, 성낙수 외솔회 회장, 이상규 교수

【울산=최수상 기자】한글날을 맞아 2008년 7월 경북 상주에서 존재가 발표된 훈민정음 해례본(이하 상주본)의 재산적 가치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년 째 문화재청과 소유권 소송을 벌이고 있는 상주본의 실질 소유자 배익기씨(54·고서적 수집판매상)가 상주본을 문화재청이 건네주는 조건으로 상주본이 가진 재산가치 1조원의 10%인 1000억 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미술 전문가와 한글학자들이 생각하는 상주본의 재산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본이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전제아래 백익기 씨가 주장하는 1조원도 웃돌 수 있다는 의견이다.

올해 4월 화재로 인해 불에 탄 상주본의 일부를 배익기 씨가 공개했다. 상주본은 2015년 3월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났을 당시 일부 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배익기 씨 제공
올해 4월 화재로 인해 불에 탄 상주본의 일부를 배익기 씨가 공개했다.
상주본은 2015년 3월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났을 당시 일부 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배익기 씨 제공


한글날을 기념해 지난 7일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 울산에서 열린 훈민정음 해례본 세계기록유산 등재 20돌 기념 학술대회에서는 KBS1 ‘진풍명품’의 감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영복 위원과 김슬옹 세종학교육원 원장 등 한글학자들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의견을 내놓아 이목을 끌었다.

김영복 위원은 경국대전 초간본 등 70여 편의 문화재가 그의 손을 거쳐 보물로 지정될 정도의 고미술 전문가다. 이날 김 위원은 구체적인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1940년 처음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간송미술관 소장·이하 간송본)의 당시 구입가격 등을 사례로 들며 상주본의 재산적 가치를 설명했다.

김 위원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40년 안동에서 이용준 씨로부터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입할 당시 책값으로 1만1000환을 주고 주었다”며 “현재 가치로 따지면 110억 원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원주에서 금광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께서 1943년 쯤 금광 4곳을 일본에 압수당하고 받은 돈이 500환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당시 1만1000환은 엄청난 돈”이라고 설명했다.

또 세종대왕(1397~1450)보다 약 70년 후대에 살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작업노트 한 권의 경매가가 355억 원가량인 것과 비교해봤을 때도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는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상주본이 등장했을 당시 소유자가 50억 원에 팔겠다는 말을 듣고 구입하러 갔지만 소유자의 변심으로 구입하지 못한 자신의 경험도 덧붙였다.

그는 논란을 우려해 구체적인 가격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백익기 씨가 주장하는 재산가치 1조원에 대해서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나 만약에 상주본이 유일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은 “하지만 상주본은 하자가 많은 것으로 안다”며 “보고 온 이들의 말에 따르면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한 장이 빠져있고 지금은 불에도 탔다고 하니 확인 전 까지는 그 만한 가치를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세종학교육원 김슬옹 원장도 “온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보전돼 있다면 1조원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그 역시 “전체 33장 중 세종대왕이 직접 쓰신 ‘御製訓民正音(어제훈민정음)이 상주본에는 통째로 없다”며 “나머지 부분은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불에 탄 상태여서 그 사람(백익기 씨)가 요구하는 그만한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체를 공개하지 않았기 학자로서 이렇다 말할 수 없지만 원본이 확실하다면 대단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소장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측면에서 상징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상주본의 경우 더 이상 개인 간의 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30억 원 가량이라도 상징적 보상을 지급하는 절충안을 마련해서 하루빨리 상주본이 세상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학자들은 재산적 가치를 논하기에 앞서 실체의 존재 여부와 보존실태, 소유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성낙수 외솔회 회장은 경제적 가치를 논하기 전에 상주본의 실체를 우선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의 의견을 제시했다.

성 회장은 “최근 상주본에 대한 재산적 가치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상주본이 화재 피해를 입은 뒤 지금은 몇 장이 남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상주본은 도난을 우려한 백 씨가 낱장으로 분리해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훈민정음 전문가인 이상규 교수(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는 상주본이 간송본과 같은 판본이고 종이의 질도 같으나 다만, 전체 18장 밖에 없는 '결손본'이라며(실물이 공개되지 않아 학자들마다 주장하고 있는 상주본의 보존상태가 다르다) 보존 정도를 낮게 평가했다.

특히 이 교수는 “소장자라고 주장하는 백씨가 상주본 존재를 발표하기 위한 TV방송 인터뷰를 할 때 담당 PD와 상주본의 발견된 장소를 설정하는 부분(미방송)이 존재해 이는 지금까지의 재판 결과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배 씨의 주장과 달리 상주본 원소장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학계 일부에서는 전문 도굴범의 증언을 통해 상주본이 1999년 경북 안동시 서후면 광흥사에서 도굴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앞서 배 씨는 2008년 7월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상주본을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