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혁신성장' 말잔치로 그치지 않으려면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9 17:05

수정 2017.11.29 17:05

[이구순의 느린 걸음] '혁신성장' 말잔치로 그치지 않으려면

서울시가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다음달부터 서비스한다. 택시 호출시장을 만든 카카오택시의 손님 골라태우기에 대한 불만이 줄어들지 않자 아예 서울시가 직접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걱정이다. 카카오는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떤 스타트업이 택시 호출이나 결제 같은 분야에서 혁신 아이템으로 창업할 엄두라도 낼 수 있을까 싶어서다. 서울시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 택시 관련 스마트 모빌리티 사업은 당분간 젊은이들의 창업 아이템에서 삭제될 것이다.

카풀 앱 풀러스는 요즘 뜨거운 감자다.
자가용 승용차에 돈을 받고 사람을 태우면 안 된다는 규제에 걸려 사업을 못하고 있다. 이 규제는 혁신형 신산업을 막는 대표적 규제로 점 찍혀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 택시업계는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완강하게 카풀 확장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뜨거운 감자를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한 채 시간만 끌고 있다.

축구 경기를 하는데 양팀 선수들이 심한 몸싸움을 벌인다. 심판이 여러번 주의를 줬는데도 선수들이 몸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보다 못한 심판이 "나랑 한번 싸워보자"며 직접 경기장에 들어간다.

또 어떤 심판은 누구 편도 들 수 없으니 경기나 끝내고 보자며 호각을 입에 문 채 경기시간만 보내고 있다. 두 경우 모두 경기는 엉망진창이 된다.

취임 6개월을 넘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아직까지 혁신성장의 구체적인 사업이 잘 보이지 않고, 구체적인 사업이 보이지 않으니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주요 장관들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혁신성장의 주역은 민간이고, 중소기업"이라며 "민간의 혁신역량이 실현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하라"고 지시했다.

민간기업들의 혁신적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는 법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행령, 고시, 공무원의 유권해석…. 실제 법률 조항에서는 규제처럼 보이지 않지만 시장에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그림자 규제가 더 무서운 실질적인 규제다. 더더욱 강력한 규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명분은 공익과 공공성이다.

그러나 심판이 경기장에 직접 들어오는 순간 선수들은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 결국 경기 자체가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혁신성장 당부보다 그다음을 챙기는 장관들 몫이 더 중요해 보인다. 대통령의 당부가 허공을 향한 외침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산업 현장에서 혁신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고쳐가는 실무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를 들으면서 혼자 상상해본다.
서울시는 택시 앱 직접서비스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카풀 앱 서비스에 대해서는 기존 택시업계와 스타트업을 한자리에 모아 중재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런 조치가 잇따라 나와줘야 대통령의 혁신성장 지시가 혼잣말이 안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디지털뉴스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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