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탈원전 vs. 에코 모더니즘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06 17:10

수정 2017.12.06 17:10

풍력.태양광은 땅을 과소비.. 낡은 생태근본주의 버리고 적정 에너지믹스 고민해야
[구본영 칼럼] 탈원전 vs. 에코 모더니즘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비틀거리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 건립이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면서다. 친환경을 내세운 신재생에너지가 외려 환경을 파괴하는 역설과 함께 문재인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 출발선에서 제동이 걸렸다.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 발전 비율을 전체 발전량의 20%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최근 방한한 스티브 추 전 미국 에너지부 장관도 그랬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자원이 원천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징후는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경북 영양과 강원 강릉의 풍력발전기 건설공사가 중단됐다. 환경부가 대규모 산림 훼손 등을 우려하면서다. 충북 괴산의 3㎿급 태양광발전소 공사가 주민의 반대로 벽에 부딪힌 것도 마찬가지다.

왜 이럴까. 재생에너지가 땅을 '과소비'해 환경오염을 유발할 소지가 크다는 걸 간과한 결과다. 좁은 면적에서 발전할 수 있는 원전을 서둘러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대체할 때 입지 문제가 큰 아킬레스건임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멀쩡한 산을 깎고 수많은 나무를 베어내야 하는데도 말이다.

미국 서부의 시애틀. 1854년께 대통령으로부터 살던 땅을 팔고 퓨젓사운드 만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하라는 제안을 받았던 수콰미시족 추장의 이름을 딴 도시다. 당시 지혜로운 추장은 "맑은 대기와 찬란한 물빛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사겠다는 건가요?"라고 되묻는 편지를 보낸다. "우리는 나무껍질 속을 흐르는 수액을 혈관을 흐르는 피로 압니다. 이 땅은 우리의 일부올시다"라는, 심금을 울리는 항변과 함께….

이후 시애틀은 늘 살기 좋은 환경도시로 손꼽힌다. 굴뚝산업이 없어서가 아니다. 시애틀엔 항공기를 만드는 보잉 본사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은 시애틀이 속한 워싱턴 주에 차세대 원자로를 개발하는 테라파워 본사를 뒀다. 그런데도 '늘 푸른 주'(Evergreen State)로 불린다. 그래서 시애틀 추장의 편지를 다시 곱씹게 된다. 실증적이 아닌, 감성적 탈원전 드라이브로 그가 말한 '거룩한 땅'을 되레 오염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국토가 매우 협소한 한국에선 토지를 적게 쓰는 에너지원이 친환경적일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다.

화석연료(석탄.천연가스), 원자력, 신재생 등은 각기 장단점이 있다. 경제성.환경성.안전성.공급안정성 등 4가지 기준으로 봤을 때다. 95%를 수입해야 하는 화석연료 발전은 에너지 안보와 환경에 취약하다. 원전은 경제성은 최고지만 안전성에 의구심이 남는다. 신재생 전력은 '날씨 변수'에다 경제성.환경성 문제로 공급이 제한적이다.

물론 이는 현 시점의 불확정적 비교일 뿐이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도 언젠가 경제성을 확보할 잠재력은 갖고 있다. '신재생은 안전하고, 원전은 위험하다'는 믿음도 흔들렸지 않나. 최근 5.4 규모 포항 강진에도 원전들은 끄떡없었는데 신재생에너지원인 지열발전소는 그 원인으로 지목됐다.

낡은 생태근본주의에서 '에코 모더니즘'으로 시각을 바꿀 때다. 과학기술이 생태를 파괴한다는 도그마를 떠나 인간과 자연이 윈윈할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문명 낙관주의 입장이다. 기술 발전의 최종 승자를 알 수 없는 지금 특정 에너지원은 맞고 다른 건 틀렸다고 예단해선 곤란하다.
한국적 현실에선 안전성을 강화한 차세대 원전과 신재생발전 간 적절한 '에너지 믹스'가 가장 합리적 대안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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