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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지금 잣대로 비트코인을 재면 안된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3 17:17

수정 2017.12.13 17:17

[이구순의 느린 걸음] 지금 잣대로 비트코인을 재면 안된다

요 며칠 비트코인 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투자한 돈이 있어서가 아니다. 디지털뉴스부장인 내가 속을 태우는 건 기사가 안 나와서다. 가끔 나오는 기사도 투자 광풍이 분다거나 가격 변동폭이 크다거나 하는 현상 기사가 전부다.

비트코인이란 무엇이고, 그 본질을 이루고 있는 블록체인은 어떤 변화를 몰고올 기술인가. 연관산업은 어찌 발전하고 있고, 우리 기업들은 어디서 기회를 찾아야 하는지. 근본을 읽는 기사는 통 없다.

하루종일 인터넷 세상에서 사람들의 관심사를 훔쳐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 요즘 비트코인은 클릭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는 보증수표다.
그런데 기자들이 기사를 안 쓴다.

누구를 닦달해야 기사를 쓸까? 편집국 조직도를 째려본다. 산업부? 대기업들을 주로 취재하는 부서다. 비트코인은 아직 대기업의 사업거리가 아니니 패스.

금융부?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을 취재하는 부서인데 금융위원회가 이미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고 규정했으니 취재할 게 없겠다.

경제부? 주요 경제부처를 취재하는 부서인데 비트코인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가 없으니 취재가 쉽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할 듯하다.

증권부. 주식시장과 투자의 흐름을 취재하는 부서이니 근접해 있는 부서이긴 하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본질과 흐름을 꿰뚫는 취재를 하기는 어렵겠다.

문제의 근본이 보였다. 비트코인은 중앙집권적 현재 금융시스템에 반해 만들어진 대안화폐다. 쉽게 말하면 중앙은행만 화폐를 찍어내고 신용을 인정하는 현재 체제를 부인하는 이단인 셈이다. 그러니 기존 금융당국이나 기업을 취재하는 기존 출입처 시스템에서는 비트코인 기사를 쓸 수도 없고, 쓴다 해도 투자 광풍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비트코인 기사는 안 쓰는 게 아니고 못 쓰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문제지만, 또한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다. 이것이 비트코인을 둘러싼 우리의 현실이다. 기획재정부, 법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관련부처들이 모여 가상통화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게 명분이다. 그런데 따져보자. 이 부처들 중 정말 관련부처가 있는가? 이들 부처 중 누가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을 연구하고, 정책적으로 한국 산업에 적용하기 위한 고민을 했을까? 지금 내놓은 규제가 2년 뒤 어떤 역효과를 낳을지 예상이라도 했을까?

기존 잣대로는 기존 체제를 부인하는 비트코인을 재단하면 안 된다.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그것을 했다.

이로써 한국 경제는 블록체인이라는 세계적 기술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투자자 보호와 함께 비트코인-블록체인 신산업을 키울 수 있는 대책을 균형 있게 마련해야 한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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