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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냉전의 교훈’을 망각한 美 언론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9 17:17

수정 2017.12.29 17:17

[월드리포트] ‘냉전의 교훈’을 망각한 美 언론

지난 1979년 성탄 하루 전날 옛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친소정권을 세우기 위해 병력 3만명을 보내 바브라크 카르말을 대통령에 앉히고 주요 도시와 도로를 장악하면서 아프간 전쟁이 시작된다.

국제사회는 소련의 침공을 비난하기 시작해 이슬람협력기구는 소련군의 즉각 철수를 결의했으며 유엔도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나아가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대소련 곡물 금수조치를 내리고 소련군이 철수하지 않는다면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불참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소련군과 친소 아프간 정부군에 맞서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반군인 '무자헤딘(성전에서 싸우는 전사)'은 산악지대에서 소총과 작은 화기로 게릴라전을 펼쳤으며 이들은 미국과 파키스탄, 중국으로부터 무기와 훈련 지원을 받으면서 강해진다. 소련군은 전투기와 무장헬기를 동원해 반군 소탕에 나서면서 민간인 희생자도 많이 발생한다.

5년 뒤 1985년 개혁 성향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다.
그는 아프간 전쟁 장기화로 소련 경제가 타격을 입자 철수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아프간 전쟁에 중대한 변수가 생긴다.

미국이 무자헤딘 반군에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인 스팅어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포의 대상이던 무장헬기를 비롯한 소련 항공기들이 하루에 1대꼴로 스팅어 미사일에 맞고 격추되자 전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소련군 약 1만5000명과 많게는 아프간 민간인 약 200만명이 사망하고 수백만명이 난민이 된 전쟁은 1989년 2월 소련군 철수로 종식되며 그해 말 고르바초프와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중해 몰타에서 회담을 가진다.

1945년 얄타에서 사실상 시작된 냉전이 몰타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스팅어 미사일은 아프간 전쟁, 나아가 냉전시대를 끝내게 한 무기로도 평가받고 있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미국의 최신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미사일 제공 소식에 러시아는 예상대로 즉각 반발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도 러시아와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며 비판적 기사를 내놨다. 러시아 정부 반응과 별 차이 없는 내용들이다.

러시아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옛 위성국이었던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2015년 1월 동부의 도네츠크국제공항을 탈환하려다 러시아 탱크에 막혀 실패했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는 무기 제공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이 분쟁이 확대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은 무전기와 야시경, 응급처치 장비와 군용 구급차가 고작이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는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계속 위반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미국 언론을 보면 과거를 너무 모르는 등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핵개발 의혹이나 테러와 관련돼 이란 문제가 나올 때마다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이 444일 동안 점거 당하면서 직원들이 인질로 잡히는 치욕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못한다.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로 불리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재임하던 30년 전 제공된 스팅어 미사일이 당시 세계 질서를 바꿔놓은 것을 한국 기자는 기억하는데 미국 언론은 잊고 있는 것 같다.

윤재준 국제부 차장 jjyoo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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