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땜질처방만 반복하는 통신요금 정책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07 17:15

수정 2018.02.07 17:15

[이구순의 느린 걸음] 땜질처방만 반복하는 통신요금 정책

최강 한파가 몰아친 지난주 갑자기 보일러가 멈췄다. AS센터에서는 동파 사고가 많아 하루이틀 안에 방문수리하기 어렵단다. 분명 동파는 아닌데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걸까. 결국 이틀이나 바깥 잠을 잔 뒤 어렵게 기사님을 맞았다. "이렇게 땜빵을 해놓으니 아예 파이프가 터진 겁니다. 애초 AS센터에 연락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겨울에 고생 안하셨을 텐데, 땜질로 넘어가려 했던 게 잘못이었습니다."

지난가을 보일러에서 한방울씩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아 보여 물 새는 부분을 천으로 동여맸다. 괜찮아지는 듯싶었는데 얼마 뒤 다른 곳에서 물이 샜다. 또 동여매고 지냈다. 이렇게 땜질한 게 세 군데나 되는 줄도 이번에야 알았다. 결국 땜질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미련함이 한겨울 고생의 원인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통신요금 인하 때문에 어지간히도 속앓이를 한다. 통신회사들 팔을 비틀어 약정할인율을 25%로 높여놨는데 정작 국민 반응은 시큰둥하다. 시민단체들은 아직도 모자란다고 한다. 월 2만원대 보편요금제를 다음 카드로 내놨는데 이번에는 통신회사들이 여력이 없다고 버틴다. 알뜰폰은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당장 고사 위기라고 난리다. 결국 과기정통부가 보편요금제 도입 뒤 별도 알뜰폰 지원책을 내기로 했다. 통신요금을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물이 샌다. 정부는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대책을 내놓지만 좀체 해결 기미는 안 보인다.

10년쯤 전에 대통령이 통신요금 인하 공약을 내놓은 뒤 정부가 곤란해졌다. 요금인하 수단은 없는데 대통령 공약을 안 지킬 수도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알뜰폰이다. 통신망 투자 없이 이동통신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요금경쟁을 붙여보자는 묘안이다. 그런데 꼼수가 끼어들었다. 알뜰폰을 빨리 키워 임기 초반에 요금인하 성과를 자랑하자는 것. 결국 최소한의 설비투자도 없는 사업자들을 대거 시장에 들이고, 통신사를 통해 무차별 지원하는 땜질처방을 했다. 지원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하는 통신사들에는 자회사도 알뜰폰 시장에 들여주는 '땜빵'을 해줬다.

이번 정부에서도 통신요금 인하가 공약이었다. 요금인하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에 약정할인율 상향, 보편요금제 도입이라는 대책을 제시했다. 당장 알뜰폰이 아우성이다. 정부는 "큰소리내지 말고 조금 기다리면 대책을 주겠다"고 땜빵을 시도한다. 통신사들도 더 이상 매출이 줄어드는 일은 못하고 으르렁거린다. 여기도 땜질을 해야 한다.

이렇게 땜질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통신시장이 멈춰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이라도 땜질로 가려놨던 문제를 끄집어내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법을 찾았으면 한다.


알뜰폰은 투자를 통해 서비스 경쟁력을 갖춘 사업자를 가려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짜 경쟁이 이뤄지는 이동통신 시장 엔진을 만들어야 한다.
서비스 요금에 정부가 직접 끼어들면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디지털뉴스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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