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갈라파고스 코리아'가 되지 않으려면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1 16:56

수정 2018.03.11 16:56

[특별기고] '갈라파고스 코리아'가 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의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혁파가 화두다. 총리가 직접 나서 혁신현장을 누비며 진두지휘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해묵은 규제사슬이 '다이내믹 코리아'를 혁신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코리아'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경이적인 기술발전 속도를 기존의 규제 틀과 정책 시각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워졌다. 정부가 연구개발(R&D) 현장과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

아직 열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가상화폐 논란은 앞으로 신기술이 만들어낼 거대한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자율주행차, 유전자 치료, 인공지능 등 미래 혁신기술이 바꾸게 될 산업 지형과 우리 삶의 모습은 그 형태를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속도가 경쟁력의 척도인 혁신적 신기술들이 제도 마련과 입법 과정에 묻혀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크나큰 국가적 손실이다. 규제 프리존 및 샌드박스,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도입 등 일련의 정책들은 비록 조금 늦은 감은 있으나 정부의 정책의지와 방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이런 정부의 정책 노력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규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혁신적 기술의 '시드' 역할을 하는 연구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구현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 마련이 최우선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연차평가 폐지, 각양각색인 부서별 R&D 관리규정의 단일화 등 연구현장 규제혁파 정책은 시의적절하다. '손톱 밑 가시'를 빼내기 위한 정부의 이번 노력이 더 큰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와 현장의 하모니 그리고 총론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정교한 세부실행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규제의 도입 과정도 정부 시각을 넘어 과학적 접근법으로 전문화돼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미래기술을 대상으로 하는 규제의 효과를 예측.평가해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규제과학(regulation science)이 연구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우리도 혁신기술에 대해서는 연구 초기단계부터 규제과학적 접근을 적극 도입, 빠른 기술발전 속도와 뒤처진 규제입법 사이의 미스매치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그 기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기술 전문가들이 규제의 틀을 만드는 데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얼마 전 민간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발표한 AI 윤리헌장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합리적 규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미래의 규제는 국가와 국민이 거부감 없이 혁신적 기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대 역할을 해내야 한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사회와 사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기술은 사장되고 만다. 정부 부처, 민간기업, 일반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조정 과정을 통해 사회시스템 변화를 유도해내는 힘을 가진 규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때 베니스는 소금과 생선 외에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게 없는 물속의 도시국가였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특허법 제정, 어음제도 활성화 등 혁신적 제도와 사회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이슬람 세력과의 교류까지 허용하는 유연한 정책을 통해 동~서와 중세~근대를 잇는 경제와 교역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우리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갈라파고스가 아닌 베니스가 돼야 한다.
낡은 규제의 사슬을 끊고 '이노베이션 코리아'로 다시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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