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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범죄 친족성폭력] '코끼리 가면' 노유다 작가 "책출판은 복수면서 치유… 10년 걸려"

<1> 친족 성폭력 자전소설 '코끼리 가면' 노유다 작가
일곱살부터 중학생 때까지 친오빠 2명에 성폭행 당해
이후 폭식증.조울증 시달려 27세때 부모에 털어놨지만 오빠는 다 그래라는 답들어
비슷한 고통 겪는 독자들에 희망의 메시지 전하고 싶어
친족성폭력은 보이지 않는 범죄다. 주로 미성년자 때부터 피해가 발생하지만 가족 내 은밀한 관계 때문에 은폐되기 쉽다. 그래서 피해자는 평생 고통 속에 산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친족성폭력 범죄는 725건, 전문가들은 특성상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파이낸셜뉴스는 가족이어서 더 드러내기 어려운 친족성폭력 문제의 실태와 법.제도적 미비점, 개선방안 등을 진단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노유다 작가가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그린 자화상. 노 작가는 친오빠 2명에게 일곱 살부터 중학교 때까지 성폭행 당했다고 밝혔다.
노유다 작가가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그린 자화상. 노 작가는 친오빠 2명에게 일곱 살부터 중학교 때까지 성폭행 당했다고 밝혔다.

차마 말하지 못한 일은 글로 쓴다. 글로 쓸 수도 없는 일은 그린다. 노유다 작가(37)는 친오빠 2명에게 성폭행 당했다. 일곱 살부터 중학생 때까지다. 그는 경험을 썼고 그렸다. 친족 성폭력 피해를 담은 책 '코끼리 가면' 한영병기판이 지난달 나왔다. 그는 책을 목소리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성폭력 트라우마 속에 잠긴 목소리를 충실히 건지기 위해 애썼다는 뜻이다.

노 작가가 종종 가는 커피숍에서 마주한 그는 출판과정이 "차가운 복수였다"며 "한 글자 눌러 담으며 냉정하게 생각하면서 썼고 책을 내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전했다. 깊은 상처를 마주하는 데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코끼리처럼 몸이 커지면…

노 작가는 오빠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가해자라고 부른다. 그는 책에서 오빠 2명이 새를 붙잡아 검은 비닐봉투에 넣던 기억을 성폭행 피해에 빗댔다. 노 작가는 "봉투 속 새처럼 너무 쉽게 죽어 버렸어"라고 썼다. 현재 이름은 개명한 것이다. 개명사유서에는 "친족성폭력 피해자다. 이름이라도 바꿔 새 삶을 살고 싶다"고 적었다.

성폭력은 노 작가 마음에 구덩이를 남겼다. 14세, 코끼리처럼 몸이 커지면 세상 어떤 망할 자식도 함부로 못할 것이라고 믿으며 밥을 먹었다. 폭식증이었다. 26세, 그는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양극성장애(조울증)였다. 환청, 환시로 홍대거리를 맨발로 걸어 다녔다. 주치의는 "어린 시절 너무 무거운 비밀을 혼자 간직해 그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라면서 부모에게 충격이 될까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못했다. 27세 여름, 친모에게 처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돌아온 답은 "세상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될 아주 더러운 이야기"였다. 친부는 "오빠들은 다 그래"라고 답했다. 가족 중 노 작가를 감싸고 오빠를 엄벌하자는 사람은 없었다.

■문학으로 성폭력 트라우마 극복

노 작가는 더 이상 가족과 만나지 않는다. 그나마 책을 낸 뒤 3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모와 최근 전화를 주고받았다. 친모 역시 어릴 때 친족성폭력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노 작가는 "부모에게는 늘 양가감정(상호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의 공존)이 있다"며 "(부모와) 같이 살았던 정은 있지만 아들들을 두둔하며 저를 비난하고 절연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극구 가해 사실을 부인하던 친오빠 2명은 노 작가에게 사과했다. 그는 "제게 최선의 용서라면 그 기억을 잊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성인이 된 뒤 친오빠 2명에 대한 고소를 준비한 적도 있다. 변호사 상담을 하니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두 오빠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회사원으로 일한다. 노 작가는 '코끼리 가면'을 펴낸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로 있다.

노 작가는 "출판과정은 복수면서 치유였다"며 "책을 내니 더는 과거를 곱씹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나 많은 독자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는 편지를 보내오면서 문제의식이 더해졌다. 그는 "친족성폭력 피해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해 괴롭다"며 "저는 문학으로 극복해왔지만 다른 분들은 고통의 사슬을 어떻게 끊어낼지.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라고 강조했다.

책 '코끼리 가면'은 코끼리가 모계사회라는 점에서 따왔다.
코끼리는 할머니가 무리 속 아이들을 지킨다. 수컷코끼리는 열 살이 넘으면 따로 산다. 노 작가는 "다시 태어나면 사람 말고 코끼리가 되고 싶어"라고 썼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