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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환율 합의 논란과 원화 강세

자료=USTR이 홈페이지 공개한 한국과 환율협의 결과
자료=USTR이 홈페이지 공개한 한국과 환율협의 결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 홈페이지의 '새로운 무역정책과 안보에 관한 한국정부와 협의 결과'를 보면 통화의 경쟁적 절하와 환율 조작을 금지하고 무역과 투자에 있어서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강력한 조항에 관한 합의가 최종단계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두고 환율 주권 침해라는 주장들도 나오고 급기야 일본경제 20년 침체의 시발점이 됐던 플라자 합의를 떠올리게 하는 결과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제1야당은 이를 정부를 비판하는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외환시장 개입 억제에 대한 사항도 논의됐지만 정부는 이를 숨기고 있다"면서 "우리가 환율통제권을 잃는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고스란히 따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그러나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미 FTA와 철강, 환율을 묶어서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FTA 과정에서 환율에 대한 이면합의 같은 것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국내 기획재정부는 미국 재무부와 환율에 대해 '별도로 논의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환율 주권 포기나 한국판 플라자 합의라는 야당이나 일부의 비난과는 별개로 금융가에선 향후 원화가 추가로 강해질지 관심이 쏠려 있다.

■ 일본의 플라자합의와 한국

플라자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맨해튼 플라자호텔에서 일본,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등 G5 재무장관들이 외환시장 개입으로 인한 달러 강세를 시정하자고 결의한 합의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미국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고 대외 불균형 축소를 위해 재정·통화 정책을 공조한다는 내용이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뒤 미국은 소득세를 대폭 삭감했다. 이 결과 미국은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합의가 있었던 1985년 당시 미국의 대일 적자는 429억달러에 달했다. 미국 재무장관은 당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했다.

이 회담의 여파는 컸다. 회담 당시 240엔대였던 달러/엔 환율은 2년 남짓 뒤인 1987년 말 120엔대로 떨어졌다.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2년만에 두 배의 가치가 된 것이다. 이후 달러/엔은 79엔대까지 폭락했다.

엔고로 일본의 내수는 활활 타올랐다. 부동산과 주식가격이 급격히 뛰는 등 자산가격 거품이 끌어올랐다. 이는 1990년대 일본 침체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한 때 세계 최고수준의 1인당 국민소득을 구가하던 일본은 현재 30위권에 가까운 인당 소득을 올리는 국가로 전락했다.

당시 달러화 강세는 통화정책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연준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폴 볼커(1979년~1987년 재임)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크게 올리면서 글로벌 달러 강세와 무역적자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은 '잘 나가던' 일본을 손 보면서 자신들의 위기 타개책을 찾았다.

경제 거인으로 성장한 일본은 미국이 안보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자신들 앞에서 읍소를 하자 인심(?)을 썼다. 일본의 자산거품과 거품경제의 붕괴가 전적으로 플라자합의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회의가 일본 침체의 시작점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USTR이 한국정부와의 합의 내용에 ‘환율’을 집어넣자 이같은 일본의 사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환율 문제로 미국에 발목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과하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예컨대 매년 특정 시점이 되면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개입 공개를 통해 떳떳하게 대응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사실 OECD 국가들은 대부분 환 개입 상황을 공개한다. 선진국 클럽에 가입했다는 한국이 계속해서 공개를 안하는 것 역시 명분이 안 서는 일이라는 평가도 많다.

아무튼 이 문제로 원화 강세가 계속 이어질지 이목이 집중돼 있다.

■ 환율보고서..낮은 조작국 가능성과 경계감
당장 이번달 글로벌 통화정책회의에 상대적으로 큰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국내의 5월 금리인상 가능성이 살아 있지만, 이달부터 한은이 움직이기는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한은은 신중한 정책 정상화를 공언한 상태이며, 금리인상 시기와 관련해 좀더 구체화된 시그널이 필요해 보인다. 이달에 주요국 통화당국들이 변화를 주기도 쉽지 않다.

당장은 이달 중순 발표될 미국의 환율보고서가 관심이다. 최근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규모는 지난해 103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3800억달러에 육박하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적자와 비교할 때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의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규모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5.1%로 줄어들었다. 한 때 7%를 넘었던 수준에서 최근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미 FTA 이후 USTR이 환율 문제를 명시했다"면서 "현실적으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이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어찌됐든 경계감은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환율조작국을 뜻하는 심층분석대상국 지정요건으로는 △ 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달러 초과 △ 경상수지 흑자의 GDP 3% 초과 △ 외환시장 달러화 순매수 비중 GDP의 2% 초과 등이다. 한국은 심층분석대상국 아래 단계인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돼 있다.

당국은 이번에도 한국이 환율조작국이 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22일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 환율과 채권
자료=코스콤 CHECK단말기, 최근 달러/원 환율 추이
자료=코스콤 CHECK단말기, 최근 달러/원 환율 추이


미국의 원화 평가절상 압력 분위기 속에 1060원을 뚫고 내려온 환율이 더 내려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미국이 중국에 대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 중인 가운데 미국이 위안화 강세를 압박한다면 원화의 달러에 대한 강세 압력 역시 더 커질 수 있다. 물론 무역 분쟁에 따라 안전자산선호가 커지면 원화 가치는 떨어질 수도 있다.

지난 3월23일 중국당국은 4월 2일부터 발효되는 관세 방안에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최대 30억달러 수준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목록을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중국은 냉동 돈육, 와인, 과일, 견과류 등 특정상품 128종에 대해 최대 25% 추가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최근 환 개입 공개 이슈가 달러/원 환율 하락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는 가운데 당장 미국의 환율보고서 역시 환 시장 개입에 대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달은 12월 결산기업들의 배당 지급에 따른 외국인들의 역송금 수요가 작용할 수 있다.

연초를 지나가면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커진다는 점이나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등도 원화 강세를 가중시킬 수 있는 재료다.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당분간 환율 하락 압력이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무역분쟁 와중에 원화 강세를 압박해 볼 수 있다"면서 "최근 1060원대 중반, 1050원대 중반에서 개입이 많이 들어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실제 그런 점이 확인될 때 한국 당국이 레벨을 관리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국이 그동안처럼 적극적인 참여를 못할 수 있다. 특히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이 대기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는 부분을 환율이 덜 반영한 측면이 있다. 아울러 4월 배당금 역송금을 앞둔 선헤지 수요 등으로 환율이 제약을 받은 면이 있다. 배당이 끝나고 수출업체들의 외화당좌예금 계좌가 풀려 물량이 한번에 쏟아지면 달러/원이 고꾸라질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고 내다봤다.

채권시장에선 원화 강세가 물가 상승률을 낮춰 금리인상을 늦출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날 나온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에 그쳤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1.0%에 그치는 등 계속해서 예상을 밑돌고 있다.

다만 원화 강세(즉 달러 약세)는 한쪽 측면만 보기도 어렵다. 달러 약세가 되면 미국의 물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올라 연준의 금리인상을 자극할 수도 있다. 한국의 물가 상승세가 제약되더라도 미국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낸다면 국내 통화당국의 인내심이 잠식될 수 있다.


은행의 한 딜러는 "환율에 따른 채권 영향은 이중적으로 봐야 한다. 달러/원 환율 하락에 따른 물가 상승률 둔화가 채권에 호재로 보일 수 있으나 달러지수 하락은 미국의 물가 부담요인"이라며 "따라서 환율에 의한 물가상승률 둔화가 채권 랠리의 배경이 되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전날 달러/원 환율은 1056.6원에 거래를 마쳐 지난 2014년 10월30일(1055.5원) 이후 3년 5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