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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인류세와 생태계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5 16:52

수정 2018.04.15 16:52

[차관칼럼] 인류세와 생태계

인류세(Anthropocene)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첸이 2000년 처음 제안한 용어다. 인류가 기후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시대에 진입했으므로 지금을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명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2개국 과학자로 구성된 국제지질학연합(IUGS) 산하 인류세 연구팀은 인류세의 도래를 알리는 강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생물종의 멸종을 지목했다.

실제 지난 500년 동안 지구 생물종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그 속도는 인간이 없는 자연계의 현상보다 100배나 빠른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페름기 대멸종과 유사한 수준의 대량 멸종사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경고도 나온 지 오래다.


그렇다고 지구 구성원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세라는 개념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생태계 복원 논의가 활발해지고 산림, 하천, 연안 등 복원의 성공 사례도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지금이 '복원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들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2007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기름 유출사고는 인근 바다와 연안을 시커먼 사막으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123만명 기적의 행렬을 기억한다. 경남 김해를 흐르는 화포천도 주목할 만하다. 10여년 전 폐기물 투기와 폐수 방류로 오염이 심각했지만 주민의 노력으로 현재 야생생물 812종이 서식하는 습지보호구역과 생태관광지역이 됐다.

환경부 역시 자연생태계의 가치와 기능을 되살리는 복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생태보전.습지보호구역을 지키면서 훼손된 서식지와 멸종위기 생물종 복원사업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비무장지대(DMZ), 백두대간, 도서 연안, 5대강 수생태축과 같은 국가 4대 핵심 생태축을 중심으로 단절된 생태계를 연결한다. 생태축이 훼손된 지역 가운데 시급성과 중요도에 따라 선정된 100개소를 2022년까지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국립공원의 가치를 회복하고 도시지역 내 생태공간을 확충하는 사업도 추진된다. 22개 국립공원에서 약 33㎢를 차지하는 마을지구의 훼손된 지역이 우선 대상이다. 또 자연마당, 생태놀이터, 도시소생태계 등 도시생태계복원사업도 시민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생태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올 하반기 경북 영양군의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문을 열면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야생생물의 복원도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센터는 개원 즉시 대륙사슴, 소똥구리, 금개구리, 나도풍란 등 7종의 동식물을 확보해 복원 연구에 착수한다. 잠정적인 목표는 2030년까지 멸종위기 야생생물 20종의 성공적 복원이다.


지구생태계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할 시간이 왔다.
인류세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회복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 선택은 순전히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안병옥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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