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사무실 책상 꾸미는 나는 '데스크테리어족'

조재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5 17:27

수정 2018.04.15 17:27

집보다 오래 머무는 일터.. 서류로 가득한 책상 대신 화분, 피겨, 인형 등으로 업무공간 꾸미며 만족감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데스크테리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데스크테리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들.

#.20대 직장인 우주씨(가명)는 대학로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공간대여 및 커뮤니티 운영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주씨의 사무실 책상은 각종 서류로 가득하다. 답답함을 느낀 그는 얼마 전부터 책상 한 귀퉁이에 작은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30대 직장인 근형씨(가명)도 직장을 옮기면서 새로운 업무 공간을 본인의 개성에 맞게 꾸몄다. 작가이기도 한 그는 업무 외에도 글 쓰는 일이 많다. 주변이 깔끔해야 집중력을 높일 수 있어서 책상 위를 최대한 깔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기계식 키보드와 다이어리, 무선 마우스 등을 놓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책상을 꾸며가고 있다.

'데스크테리어(deskterior)족'이 늘고 있다. 데스크(desk)와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인 데스크테리어는 사무실 책상을 꾸미는 것을 말한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 바로 일터인데, 업무공간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며 심리적 위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데스크테리어족'이라고 부른다.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나만의 공간' 추구

15일 주요 인터넷 쇼핑몰등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꾸준히 데스크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니 화분 등 데스크테리어 용품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올 초 오피스용품 중 데스크테리어용품이 500% 이상 늘었다는 인터넷 쇼핑몰 집계도 나올 정도다.

지난해 2월 잡코리아가 직장인 7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68.8%가 '데스크테리어에 관심 있다'고 답했다. '스스로 데스크테리어족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응답은 36.8%였다. 응답한 여성 직장인의 44%가 스스로 데스크테리어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성 직장인은 29.7%로 여성 직장인들이 상대적으로 데스크테리어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스크테리어는 젊은 여성 직장인들이 시작했지만 더 이상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20대 직장인 A씨는 "3040 남성 직장인들도 데스크테리어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위 고하와 관계없이) 일에 대한 해방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고, 쾌적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경향이 점차 커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데스크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이유(복수응답)를 묻자 70%가 '오래 머무는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꾸미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책상을 꾸미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서'라고 답한 응답자도 33.4%였다. 데스크테리어족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38.3%로 적지 않았다.

데스크테리어는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찾으려는 경향인 '케렌시아(Querencia)'의 일종이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안식처를 의미하는데 투우 경기 중 소가 잠시 숨을 고르며 쉬는 공간을 일컫는 말이었다. 케렌시아는 '플라세보 소비', '소확행' 등과 함께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선정한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 중 하나다.

■데스크테리어족, '앞으로도 증가할 것' 86.4%

데스크테리어에 원칙은 없다. 무선 키보드나 기계식 키보드, 모니터 받침, 필기구, 무드등, 방향제, 인형, 피겨, 화분 등 업무 공간을 꾸밀 수 있는 소품은 각양각색이다. 데스크테리어족이 되고 싶다면 각자 끌리는 대로 꾸미면 된다.

우주 씨에게 '왜 화분을 사무실에 가져다 놨느냐'고 묻자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자연 속에 있을 때가 행복한데 식물이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것 같다"며 "지금은 선인장 밖에 없는데 꽃도 꽂아두고 싶고, 여건이 된다면 좀 더 큰 나무도 옆에 두고 싶다"고 덧붙였다.

앞선 잡코리아 설문조사에서 '향후 데스크테리어족이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86.4%가 '증가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유는 '데스크테리어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젊은 직장인이 늘 것'이라는 응답이 50.4%, '데스크테리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서'가 47.7%였다.

나만의 작은 여유를 찾기 위한 트렌드가 다양해지고 동시에 세분화되고 있다. 데스크테리어의 핵심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는 데 있다.

사실 데스크테리어 유행에는 개인의 개성 추구가 주원인이지만 이면에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도 큰 몫을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00년대 들어 해마다 연평균 근로시간은 조금씩 줄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근로시간이 긴 나라'에 속한다. 어차피 오래 일할 곳이라면 나와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어 업무 효율을 높이거나 심리적 위안을 얻겠다는게 신세대 직장인들의 의식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30대 직장인 B씨는 데스크테리어 확산에 대해 "(데스크테리어족은 아니지만)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불편함과 거부감을 덜어내기 위해 본인과 친숙한 물건을 놓는 게 아닐까 싶다"고 해석했다. 그는 "익숙한 환경에서 작업이 잘 되니 사무실도 그와 비슷하게 꾸며 업무 효율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취업 1년차 직장인 C씨는 "주변의 눈치가 조금 보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만족도가 높아서 괜찮다"며 "최근 들어 젊은층을 중심으로 '워라밸', '소확행' 같은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소비가 늘고 있고, 데스크테리어도 그러한 소비의 일환으로 본다"고 말했다.

ocmcho@fnnews.com 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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