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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종부세 브레이크는 있나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6 17:01

수정 2018.04.16 22:24

강경론자들에 끌려 다니다 위헌 자초한 경험 기억해야
절제된 개혁이 성공의 조건
[염주영 칼럼] 종부세 브레이크는 있나

헌법재판소가 2008년에 내린 종합부동산세 일부위헌 판결의 내용을 다시 찾아봤다. 문재인정부가 종부세 카드를 들고 나와서다. 이 시점에서 그 내용을 음미해보는 것은 의미가 깊다.

당시 헌재의 심판에 부쳐진 내용은 미실현이익 과세, 이중과세, 세대별 합산 과세, 1주택 장기보유자 과세 등 네 가지였다. 헌재는 이 가운데 두 가지가 헌법에 저촉된다고 봤다. 세대별 합산 과세는 위헌으로, 1주택 장기보유자 과세는 헌법불합치로 판결했다.
그러나 미실현이익 과세와 이중과세 부분에 대해서는 합헌으로 판정했다. 당시 위헌 논란을 키웠던 핵심적인 사안이 이 부분이었음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위헌보다 합헌 쪽에 무게중심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는 판결이었다.

그럼에도 이 판결의 정치적 의미는 법적 의미를 훨씬 뛰어넘었다. 노무현정부가 잘한 정책들까지 도매금으로 정당성을 부정하는 빌미가 됐다. 많은 개혁적 조치들이 늦가을 바람에 낙엽 지듯 우수수 떨려 나갔다. 이명박정부는 종부세법을 대폭 개정했다. 그 결과 10억원짜리 1주택을 가진 70세 이상 고령자의 종부세 부담은 개정 전 405만원에서 개정 후 28만원으로 줄었다. 한마디로 종부세는 유명무실해졌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문재인정부가 종부세를 다시 옛날로 되돌리려고 한다. 지난주 재정개혁특위를 만들어 위원장에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을 지낸 강병구 교수(인하대)를 선임했다. 참여연대는 특위 출범에 맞춰 종부세율을 현재 0.5~2%에서 1~4%로 두 배로 올리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참여정부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관련 세금은 거래세 비중이 높고, 보유세 비중이 낮아 기형적인 구조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종부세 인상은 옳은 방향이다. 그렇더라도 여기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모험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세금이 정권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로 민감한 문제라는 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종부세는 과세대상 부동산의 가액을 합산해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세금이다. 합산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10배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2005년에 종부세를 인별 합산 방식에서 세대별 합산 방식으로 고칠 때 참여정부 안에서도 반론이 많았다. 헌재는 2002년에 이미 금융소득 부부 합산 과세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세대별 합산은 부부 합산보다 훨씬 더 나간 것이다. 당시에도 위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지적들이 있었다. 하지만 한번 발동 걸린 강경론자들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판이 벌어지면 강경론자들이 득세하는 것은 개혁의 생리다.

세금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내는 세금이든 남이 내는 세금이든 마찬가지다. 나는 참여정부 시절 종부세를 한 푼도 안낼 것 같은 사람들도 종부세에 손가락질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면 가난한 사람들이 박수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강경론자들의 목소리가 개혁을 끌어가는 추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때때로 개혁을 좌초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영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재정개혁특위에 절제된 개혁을 주문하고 싶다. 너무 강해서 부러진 것이 참여정부 종부세였음을 기억하자.

y1983010@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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