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쌀 변동직불금제 폐지가 답이다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4 17:18

수정 2018.05.14 17:18

돼지 사료로 먹이는 현실이 정책의 불합리성 잘 보여줘
농업도 시장원리 존중해야
[염주영 칼럼] 쌀 변동직불금제 폐지가 답이다

정부는 쌀을 돼지와 닭에게 먹이고 있다. 2016년 처음으로 9만9000t을 사료공장에 공급했다. 지난해엔 공급량을 52만t으로 늘렸다. 농민들에게서 8119억원에 사들여 사료공장에는 1082억원을 받고 팔았다. 그 쌀을 사람이 먹지 않도록 감시했다. 사람이 쌀을 먹으면 부정유통이라며 단속했다.
농민들이 땀 흘려 농사지을 때 자기 논에서 생산된 쌀을 돼지와 닭이 먹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는 왜 이처럼 이상한 일을 하는 걸까.

변동직불금제가 화근이었다. 정부는 200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자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는 대신 변동직불금제를 도입했다. 쌀의 목표가격을 정하고 수확기 산지 쌀값이 이에 못 미치면 차액의 85%를 정부가 메워주는 제도다.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소비량이 매년 2%씩 줄어드는데도 생산량이 줄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격차가 점점 벌어지며 재고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2016년에는 재고량이 183만t으로 적정 재고(80만t)를 100만t 이상 초과했다. 전국의 양곡창고가 가득 차는 바람에 쌀을 길바닥에 쌓아야 했다. 쌀을 사료로 쓰자는 발상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었다.

비용 문제도 심각했다. 초과재고를 관리하는 데만 한 해 3000억원이 쓰였다. 장기보관에 따른 쌀의 가치 하락은 이보다 몇 곱절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직불금이었다. 재고가 쌓일수록 쌀값은 떨어지고, 그에 반비례해 정부가 메워줘야 할 직불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6년 한 해에만 2조3000억원(고정직불금 포함)이나 됐다. 정부 보조금과 직간접 비용을 모두 합치면 과잉재고로 한 해 3조~4조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불합리와 낭비는 시장원리 훼손에 대한 시장의 징벌이었다. 시장원리란 시장이 가격을 통해 수급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을 말한다. 변동직불금제는 농민들에게 가격 리스크 부담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농민들이 쌀값 폭락 걱정 없이 생산에만 전념하라는 취지였다. 그러자 수급조절 기능이 마비되면서 쌀값이 폭락했다. 재고가 넘쳐 창고가 부족한 상태인데도 과잉생산이 계속돼 쌀을 가축 사료로 세일판매해야 하는 지경까지 갔다. 변동직불금제는 함부로 시장원리를 훼손하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온다는 교훈을 남겼다.

정부는 최근 재정지출구조 개혁의 하나로 쌀 변동직불금제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개선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키라고 주문하고 싶다. 첫째는 시장원리 복원이며, 둘째는 재정부담 적정화, 셋째가 농가소득 보장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너진 시장원리를 복원하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변동직불금을 폐지하는 방안과 변동직불금을 존속시키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심할 이유가 없다. 변동직불금제 폐지가 답이다.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한 어떤 보완책도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농업도 시장원리를 존중해야 한다.

나는 농가의 소득안정을 위해 필요한 돈은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쌀을 제값 주고 사서 사료공장에 8분의 1 값에 넘기는 것과 같은 방식은 납세자에 대한 모욕이다.
나랏돈을 이렇게 쓰라고 국민이 세금 낸 게 아니기 때문이다.

y1983010@naver.com 염주영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