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낙태죄 폐지 격론 벌어진 헌법재판소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 vs. "태아 생명권 보장"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24 17:11

수정 2018.05.24 17:11

"낙태죄 폐지해야" 낙태 허용하는 오스트리아..금지국보다 낙태비율 낮아
"국가가 생명 보장을" 낙태 허용에 관한 논의는 모자보건법 개정하면 충분
공개변론 기다리는 9인의 헌재 재판관 24일 서울 북촌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낙태죄' 합헌에 대한 공개변론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재판관 이선애, 서기석, 안창호, 김이수, 이 헌재소장, 재판관 김창종, 강일원, 조용호, 유남석. 사진=박범준 기자
공개변론 기다리는 9인의 헌재 재판관 24일 서울 북촌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낙태죄' 합헌에 대한 공개변론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재판관 이선애, 서기석, 안창호, 김이수, 이 헌재소장, 재판관 김창종, 강일원, 조용호, 유남석. 사진=박범준 기자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조항 폐지 여부를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위헌소원을 제기한 측에서는 낙태죄로 인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했고 반대 측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맞섰다.

■"낙태죄 폐지와 낙태 만연, 근거 없어"

헌재는 24일 낙태죄 관련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형법 269조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270조 1항은 '의사·한의사·조산사·약제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낙태죄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는 해당 조항들이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청구인 측 김수정 변호사는 "헌법적 쟁점을 파악하면서 여성들의 현실과 경험을 고려해야 한다"며 "10대인 학생이 임신하면 학교에 다닐 수 있는지, 영아 살인과 유기가 왜 계속 발생하는지 형사처벌과의 관계가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어떠한 피임방법을 적용해도 불가피한 임신이 발생하고 이후 출산과 양육에서 여성들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며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1973년 낙태를 합법화하며 '어머니 됨이 재앙일 수도 있다'고 판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청구인 측은 낙태죄를 폐지하면 낙태가 만연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처럼 낙태죄를 금지한 뉴질랜드가 낙태를 허용하는 오스트리아보다 낙태 비율이 몇 배는 높다"면서 "여성의 낙태 결정은 자기 생의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국가는 생명보장 의무"

이해관계인인 법무부 측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했다. 법무부의 대리를 맡은 정부법무공단 서규영 변호사는 "국가는 인간의 생명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태아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낙태죄가 없다면 태아의 생명보호조치가 사라져 위헌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서 변호사는 "형법에서는 낙태를 금지하지만 모자보건법에서는 일부 사정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며 "낙태허용 논의는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충분히 반영할 수 있어 위헌으로 여길 부분이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양측의 발표 이후 재판관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은 "청구인 측은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상위에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최현정 변호사는 "질문에서 태아가 온전한 인간이라고 전제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법적으로 태아와 사람을 구분한다"고 지적했다.


김광재 변호사도 "태아는 임산부의 영양으로 자라고, 24주 이상이 돼야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춘다"며 "단순히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으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사건은 올 9월 이전에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이진성 헌재소장과 김이수·강일원·김창종·안창호 재판관이 오는 9월 퇴임하기 때문이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