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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아버지 술친구의 걱정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5 17:28

수정 2018.06.25 22:25

전용기 건설부동산부장
전용기 건설부동산부장

필자의 아버지는 술친구를 여럿 두고 있다. 30년 전 부산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 왔다. 가구업계에 종사하시다 은퇴한 뒤 동네 술친구가 늘었다.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에 더해 두 아들에게 매달 용돈을 또박또박 받는 덕분에 술값은 주로 아버지가 낸다. 고정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남한테 줄 돈 없으면 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나이 들어 비록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갚아야 할 돈이 없으면 행복한 삶이라는 지론이다. 부지런히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아버지는 포천을 찾을 때마다 술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중 폐지와 빈병을 수거해 용돈벌이를 하는 친구 분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경제신문 기자 아들에게 밑바닥 경기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지난해 한참 좋을 때는 폐지 가격이 ㎏당 160원까지 갔지 아마. 보통 리어카에 한 짐 실으면 130~140㎏ 정도 나가는데, 돈으로 2만2000원이 넘는다. 그래서 그때는 종종 술을 얻어먹고는 했는데, 지금은 폐지 값이 형편없어서 거의 내가 사는 편이다."

아버지가 전해주는 현재 폐지 가격은 1㎏ 50원 수준이다. 전업(?)으로 폐지를 수거하러 다니면 하루 한 리어카 정도는 채울 수 있다고 한다. 이를 고물상에 가져다 줘도 6000~7000원 정도밖에 안된다.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2000~3000원 정도 손에 쥐면 다행이다. 그마나 고철 가격은 덜 하락했다. 고철 1㎏에 지난해 한참 가격이 좋을 때 250원이었는데 현재 2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고철은 고물상에서 거래처 개념으로 접근, 직접 트럭을 보내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 요즘은 길거리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폐지 가격이 고정 수입이 없는 수많은 노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만난 아버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폐지 수거도 거래처 관리가 필요해. 다 담당이 있어서 아무나 주지 않아. 그런데 최근에 장사가 너무 안돼서 문 닫는 가게가 그렇게 많다는 거야. 가게가 문을 닫으면 폐지를 수거하는 입장에선 거래처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야. 오래된 가게는 그나마 그럭저럭 버티는 모양인데, 새롭게 신장개업한 곳들 대부분이 얼마 가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고 하니 큰일이지. 연초 신장개업 전단지를 돌렸던 '뼈다귀해장국'도 결국 빈 가게가 됐지 뭐야."

'고정 거래처가 없어진 것도 안타깝지만 문 닫은 식당 주인이 뭘 먹고 사나?'라고 걱정하는 친구 분을 위로하라고 아버지에게 예정에 없던 용돈을 드려야 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급락한 폐지 가격보다 문 닫은 가게를 걱정하는 아버지와 친구 분을 생각하니 소득주도성장 홍보에 나선다고 하는 정부여당이 떠오른다.
6·13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우기 위해 대대적 홍보에 나선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홍보도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지역구에 가서 폐지 수거하는 노인들에게 밑바닥 경기를 듣는 게 먼저 아닐까.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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