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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재무학회 칼럼] 기능직과 청년실업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7 17:15

수정 2018.07.17 17:15

[한미재무학회 칼럼] 기능직과 청년실업

캐나다의 겨울은 무척 춥고 길다. 긴 겨울이 끝나면, 집 안팎으로 해야 될 일이 쌓여 있다. 헌데 한겨울 내내 차 바퀴에 묻어온 흙과 소금이 널려 있는 차고를 청소하지 않으면 겨울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가 캐나다에서 맞는 봄은 차고 청소로부터 시작된다. 차고 청소 후에도 할 일이 많다. 잔디 깎고, 비료 주고, 죽은 잔디 걷어내고, 조그만 텃밭 엎어놓고, 집 안팎 유리 청소하고, 앞마당에 있는 조그마한 개울 정리하는 등 할 일이 끝이 없다.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키면 편하겠지만 비용이 만만하지가 않아 쉽게 사람을 부를 수도 없다. 어렸을 때 집에서 못 하나 박은 기억이 없지만 결국은 내가 집안일을 배워서 하는 수밖에 없다.

인건비가 비싼 만큼 이곳 캐나다에서 기능(용접공, 배관공, 도장공, 이발사 등)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 부부 중 한 명만 일을 한다면 생활이 조금 빠듯하겠지만 부부 모두 일을 한다면 일년에 한두 번 해외로 휴가여행을 다닐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따라서 많은 학생들이 굳이 4년제 대학을 가지 않고 2~3년제 전문대학에 진학한다. 캐나다 통계국 자료에 의하면 2016년에 캐나다 고등학생의 24.7%가 4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31.6%가 전문대학에 진학했다(우리나라는 2016년 현재 69.8%가 전문대학이나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나라의 청년실업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만 전문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것도 해결책 중 하나다. 이 해결방안이 유효하려면 정부와 사회 전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선은 전문대학 졸업생과 4년제 대학 졸업생 사이의 임금격차가 줄어야 한다. 물론 임금은 노동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니 정부가 쉽게 관여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이 전문대학 졸업생의 주고용주라고 한다면 정부는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임금격차 외에도 해결돼야 할 문제가 있다. 기능직과 전문대학 졸업자를 향한 사회의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사무직이나 기술직이 기능직보다 우월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전문대학 졸업자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다면 이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캐나다에서 내가 처음에 살던 동네는 전형적인 중류 동네인데 교사, 의사, 건축업자, 약사, 도장공, 교수 등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다. 직업도 다르고, 경제적 여유의 차이도 있지만 실제 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거나 학력이 높다고 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 없다. 경제적 여유가 없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고 주눅 드는 모습도 없다. 소위 '갑질'하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갑질'을 한다면 동네에서 비난을 받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신고를 해 경찰에 끌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재벌이 '갑질'을 해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부당한 처신을 했다면 부당한 처신을 한 기업주가 조사를 받고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권의식을 갖고, '갑질'을 하는 계층의 사람이 있다면 정부는 이들을 처벌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줄어들도록 해야 한다.

돌담을 보면 큰 돌, 작은 돌, 둥근 돌, 모난 돌 등 온갖 모습과 크기의 돌이 다 나름대로 쓰임이 있어 하나의 담을 이룬다.
사회도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형태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제 능력대로 사회에 공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능력이 남보다 많아도 굳이 내세워 보이려 하지 않고, 능력이 남보다 떨어진다 해도 주눅 들지 않는 것이 수평적인 사회 관계의 모습이다.
한국의 봄이 이런 분위기로 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수 캐나다 리자이나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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