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文대통령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23 17:14

수정 2018.07.23 17:14

반기업은 부정적·파괴적인 정서.. 헌집 허물 수 있어도 새집 못지어
유착을 피하되 협력관계는 필요
[염주영 칼럼] 文대통령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지금 여권에서 경제와 관련해 가장 당혹감을 느끼는 사람을 꼽는다면 문재인 대통령일 것이다. 올 들어 저소득층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들고, 빈부 간 소득격차가 벌어지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들도 형편이 나아져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집권 1년을 훌쩍 넘긴 요즘 나타나고 있는 결과는 문 대통령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들이 무색할 만큼 엉뚱하다. 문 대통령은 분명히 동쪽을 향해 길을 나섰는데 도착해서 보니 서쪽에 와 있음을 알게 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돌이켜 보면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작금의 노동현안이 문재인정부에 큰 짐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작금의 노동현안이란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 이른바 '친노동·반기업' 정책의 문제를 제기한 발언이었다. 여권 내부에서 '친노동·반기업'에 대한 경계경보가 울렸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누구든 반기업을 외쳐야 개혁적이란 말을 듣고, 친기업을 하자고 하면 반개혁으로 몰리는 분위기였다.

진보정부가 기업과의 관계에서 착각하기 쉬운 두 가지 함정이 있다. 하나는 대기업을 때리면 박수 받는다는 생각이다. 이 명제는 유효기간이 길어야 1년이어서 이미 끝났다. 집권 2년차에 들어서면 경제분야에서 실적 지표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실적이 나쁘면 아무리 대기업을 때려도 박수가 나오지 않는다. 또 하나의 함정은 대기업을 때리면 맞고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투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반격한다. 대기업이 보복 차원에서 투자를 줄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기업의욕이 감퇴되고, 기업활동 여건이 좋지 않다는 판단으로 이어지면서 투자가 줄어들게 된다. 중요한 것은 투자감소가 정권에 아픔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저소득층 소득감소는 투자감소와 연관이 있고, 투자감소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 보면 친노동·반기업 정책으로 이어진다. 기업 때리기가 지나치면 경제는 물론이고 정권에도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 이 총리의 걱정은 현실이 됐고, 문재인정부는 큰 짐을 짊어졌으며,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의 오작동으로 아픔을 겪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인도 방문 때 삼성전자 현지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이것이 친기업 정책으로 선회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되면서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반기업=개혁' '친기업=개혁후퇴'라는 등식은 지나치게 도식적인 사고가 아닐까. 개혁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반기업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정서여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헌 집을 부술 수는 있어도 새 집을 짓지는 못한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 한다. 유착을 경계하되 건설적인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앞으로 실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최근에 문 대통령 지지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는 것은 실적장세의 결과다. 기업을 적으로 돌리고 경제가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난센스다.
투자와 고용에서 기업의 협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담당하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경제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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