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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무역전쟁과 트럼프 호감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27 16:07

수정 2018.07.27 16:07

[월드리포트]무역전쟁과 트럼프 호감도


며칠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수잔이라는 미국 할머니와 미국·중국 무역전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녀로부터 한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수잔은 민주당원이며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트럼프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쉽게 대답할 성질은 아니라고 판단됐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하기도 곤란해 최근 인터넷에서 접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하나는 이달 초 공개된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였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주변국가 미국·북한·일본·중국 지도자들 가운데 트럼프에게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언론들이 트럼프의 기행과 막말을 크게 취급하고 있음에도 한국인들은 다른 주변국 지도자들보다는 트럼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고 설명해줬다.

수잔에게 인용한 또 다른 사례는 인터넷에 올라온 한국 언론 기사의 댓글이다. 미국이 중국산 물품에 관세 부과를 확대하더라도 중국이 동원할 수 있는 실질적 보복수단은 제한돼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 기사가 아니라 댓글이었다. 약 20개의 댓글을 읽었는데 정말 하나같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중국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트럼프가 이 기회에 중국의 잘못된 관행과 행태를 시정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코멘트, 그리고 트럼프를 격려하고 성원하는 댓글들이 주류를 이뤘다. 평소 한국처럼 만만한 국가들을 괴롭혀온 중국이 트럼프에게 당하는 것이 고소하다는 글도 올라 있었다. 이후 몇몇 다른 무역전쟁 관련 기사들의 댓글도 유심히 살펴봤지만 대체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내용이 우세했다.

한국 언론들이 연일 트럼프가 시작한 무역전쟁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가운데 인터넷에서 접한 한국 내 반응은 정말 뜻밖이었다. 한국인들이 무역전쟁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트럼프가 한국인들을 동원해 이런 댓글들을 달았을 리도 없다. 결국 그렇다면 인터넷상의 반응들은 상당수 한국인들이 적어도 미·중 무역전쟁에 있어서만큼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으며 중국의 무역관행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에 대한 한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근거가 없거나 지나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이 취했던 상식 이하의 행동을 기억한다면 지금 한국민이 보이는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다.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한국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함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를 통쾌하게 생각하며 성원하는 것은 필경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 중국 당국자들과 언론은 마치 중국이 세계 자유무역의 신봉자이자 마지막 보루인 것처럼 행동한다. 중국 언론들은 미국의 무역 패권주의가 세계에 피해를 주고 있으며 무역전쟁을 도발한 미국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비난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국의 이 같은 호소가 아직까지는 국제사회에서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 지식재산권 절도 의혹, 자신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치졸한 보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곤경에 처했지만 선뜻 중국을 거들지 않는 것은 결국 중국에 대한 반감과 부정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양치기 소년'으로 취급받지 않으려면 자유·공정무역을 외치기 앞서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된 관행들을 시정해야 할 것이다.

jdsmh@fnnews.com 장도선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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