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문재인표 실사구시가 옳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13 17:27

수정 2018.08.13 17:27

참여정부 실패는 반면교사 서민이 힘들면 다 부질없어
성공한 정부가 대통령의 꿈
[곽인찬 칼럼] 문재인표 실사구시가 옳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년)는 정조 때 사람이다. 서자라 벼슬이 높이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정조가 재능을 아낀 덕에 규장각에서 일을 했다. 이덕무는 박물학자다. 조선 선비답지 않게 자연에 관심이 컸다. 그가 쓴 책의 이름도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다.
듣고 보고 말하고 느낀 대로 적었단 뜻이다. 개미와 벌을 관찰한 대목을 보자. "만 마리의 개미 떼가 진을 이루고 행진할 때 깃발과 북소리를 빌리지 않아도 절도가 있다. 천 마리 벌의 방은 기둥과 들보에 의지하지 않아도 칸과 칸 사이의 간격이 저절로 균등하다"('문장의 온도'에서 재인용). 공자 왈 맹자 왈, 공리공론은 한 자도 안 보인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보수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칭찬했다. 지난 7일 문 대통령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족쇄를 풀자고 제안했다. 은산(銀産)분리는 은행과 산업자본 사이에 친 칸막이다. 산업자본, 곧 재벌이 은행을 가지면 은행 돈을 마치 제 돈인 양 멋대로 쓸까봐 벽을 쌓았다.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은산분리 규제를 지지했다. 이걸 바꾸자고 했으니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는 '은산분리 규제완화는 말의 성찬을 앞세운 불장난'이라고 비판했다. 거꾸로 한국당은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문 대통령의 파격에선 체계적인 냄새가 난다. 그는 지난 6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작심한 듯 '실사구시' 이야기를 꺼냈다. 이날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막 업무에 복귀한 날이다.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부터 과감히 혁신해야 한다"면서 "실사구시적인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 활동이 활발해지고,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이 높아져야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름만 가리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 말인 줄 알겠다.

'실사구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불현듯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난해 5월 23일, 문 대통령은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 사실 좀 뜻밖이었다. 운명처럼 맺어진 두 사람이 1년에 한 차례 추도식에서 만난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바로 그다음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

이제 와서 실토하는데, 나는 당시 문 대통령이 여느 사람과 다르다고 느꼈다. 최근 실사구시를 말하고,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말하는 모습에서 내 짐작이 옳았다는 판단이 선다. 진보의 무능은 문 대통령에게 큰 짐이다. 그래서 늘 유능한 정부를 외친다. 참여정부는 이상은 높았지만 힘은 모자랐다. 참여정부는 문재인정부의 반면교사다.

이덕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대학 시절 롤모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덕무는 말한다. "사람의 병폐는 천박하고 경솔하지 않으면 반드시 꽉 막혀 있다는 것이다." 가벼워도 병폐, 고지식해도 병폐다. 최저임금 정책을 보자. 명분은 근사하지만 너무 쉽게 봤다. 일자리는 줄고, 자영업자들은 불복종 운동에 나섰다. 촛불정부, 서민정부란 간판이 부끄럽다. 문 대통령은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 그는 막힌 사람이 아니다. 참여정부는 실패했다. 문재인정부는 참여정부 시즌2다.
하지만 이번엔 성공한 시즌2가 돼야 한다. 백성한테 소용 없으면 다 부질없다.
문 대통령의 실사구시 정책을 지지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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