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단체

[차장칼럼]부자들의 '발 달린 돈'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11 17:21

수정 2018.09.11 17:21

[차장칼럼]부자들의 '발 달린 돈'

요즘 강남 부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산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돈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지키는 데만 애를 쓴다니 아이러니다.

하지만 강남 부자들이 볼 때는 돈에 분명히 발이 달려 있다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발'은 세금과 규제다. 그동안 전문가의 도움과 세(稅)테크로 '발 달린 돈'을 지켰지만, 부자 증세를 앞세운 문재인정부 들어선 이것도 쓸모없어졌다.

증시 불황에도 부자들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강남의 프라이빗뱅킹(PB) 센터들은 바쁜 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일의 성격은 좀 달라졌다. "하반기로 넘어가면서 이민상담이 급증했어요. 농담이 아니라 심각하게요."

강남의 한 PB센터장의 말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고 느낀 많은 부자들이 아예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금이 늘었다지만 이민은 너무 극단적이다. 그러나 부자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란다.

"소득주도 성장은 모순덩어리입니다. 큰 바지를 입힌다고 해서 키가 크는 것이 아닙니다. 설계부터 거꾸로 된 정책 아닙니까. 무엇보다 이 정권이 귀 닫고, 눈감으면서 본인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돌아볼 생각조차 안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제가 왜 이민까지 생각해야 합니까."

부자들과 고위층들은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답답해서 토로했고, 듣질 않으니 결국 좌절했다는 것이다. 물론 부자들의 애로는 서민들에게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먹고사는 기준이 다르니 당연히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등 돌린 부자들이 투자하지 않고 돈을 쥐고만 있으면 경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탈 난 경제 탓에 주식시장은 죽을 쑨다. 부자들의 돈은 부동산 시장에만 모여 기형을 만든다. 기형화된 부동산 시장의 최대 피해자는 또 실수요자인 서민이다. 이 와중에 부자들이 돈을 싸들고 한국을 떠나면 일은 훨씬 심각해진다. PB센터에 잇따르는 이민상담을 위기 직전의 경고등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이는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야를 조금 넓혀 기업을 보자. 특히 제조업 기반의 기업들은 해외이주를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최고 세율 기준 25%의 법인세에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 규제 등 버티는 게 용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법인세율 인하였다. 그런데 또 법인세율(21%→20%)과 개인소득세 세율(39.6%→37.0%)을 내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기업은 앞으로 10년간 약 110조원의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다. 그만큼 미국 제품 가격은 내려간다.
상대적으로 우리 제품은 시장경쟁력을 잃는다. 기업이 장사가 안 되면 전체 법인세수는 낮아진다.
돈에 발을 다는 부자 증세만이 정답은 아니다.

km@fnnews.com 김경민 산업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