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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세계는 미얀마를 지켜보고 있다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14 16:17

수정 2018.09.14 17:10

[월드리포트]세계는 미얀마를 지켜보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의 꽃' 아웅산 수치 여사는 2012년 6월 16일 긴장된 표정으로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안에 마련된 푸른색 단상에 섰다. 하랄드 5세 노르웨이 국왕과 소니아 왕비를 포함해 600여명의 내빈 앞에서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보라색, 연보라색, 아이보리색으로 이뤄진 미얀마 전통의상을 입은 수치 여사는 침착하게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연설 도중 박수가 쏟아졌고 연설 뒤엔 2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시민의 용기를 보여준 가장 위대한 선례'인 민주화 영웅에게 보내는 존경의 박수였다.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영국 유학 도중 만난 남편과 두 아이를 낳고 가정주부로 살다가 1988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에 잠시 귀국한 그는 그해 8월 8일 수천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숨진 '8888' 사태를 보고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네윈 장군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했지만 뒤이은 군사정변으로 1989년부터 2010년사이에 총 15년간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은 이 때문에 21년이나 늦게 이뤄졌다.

수치 여사는 이날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세계는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세계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고. 미얀마에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수감자들은 석방됐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수감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잊혀지는게 두렵다"고. "세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개인, 민족과 국가의 단결과 인간사회를 더 안전하고 평화롭게 하는데 의로울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6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의 실권자인 수치 여사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벌어진 정부군의 로힝야족 집단학살에 대해 침묵 또는 두둔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위기그룹(ICG)은 "한 지도자의 명성이 이렇게 큰 폭으로, 이렇게 빨리 추락한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로힝야 학살 사건을 취재하던 도중 함정수사에 걸려든 로이터통신 기자들에게 '공직 비밀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한 법원의 결정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감쌌다. 이 같은 태도에 로이터통신 기자 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수치를 사랑했고 너무나 존경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남편들이 공직 비밀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기자가 아니라고 말했다"며 "존경했던 사람이 우리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어 매우 슬프다"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이번주 로힝야 사태에 대해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1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아세안 지역회의 대담에서 로힝야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지나고 보니 그 상황을 더 잘 대처할 방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후회나 반성과는 거리가 먼 아쉬움 또는 유감 정도였다. 대신 로힝야 사태에 개입하려는 국제사회 움직임을 경계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우리는 장기적인 안정과 안보를 위해 모든 당사자에게 공정해야 한다. 법치는 모두에게 적용돼야 하고, 누가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 선택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주 로힝야족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의혹에 대해 관할권을 갖고 조사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가 주도해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 역시 최근 미얀마군이 명백하게 인종청소 의도를 갖고 대량학살과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으며 책임자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등 군부 지도자 6명을 중범죄 혐의로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6년 전 수치 여사의 연설처럼 세계는 여전히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주목하고 있고, 미얀마를 잊지 않고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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