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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아산이 꿈꾼 남북경협의 길이 열린다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19 16:39

수정 2018.09.19 16:39

[차장칼럼] 아산이 꿈꾼 남북경협의 길이 열린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분단 이후 민간기업인 최초로 북녘땅을 밟았다. 20년 전 이른바 '소떼 방북'을 통해서다. 아산(정주영 회장의 호)의 담대한 발걸음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발 등 경제협력에 물꼬를 터 남북 교류사에 큰 획을 그었다. 소를 1000마리에 1마리를 보탠 1001마리를 몰고 간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1000은 끝이 될 수 있지만 1002, 1003 등 그 이상으로 뻗어나가 남북 교류의 맥이 이어지길 바랐다. 당시 아산은 기자회견에서도 "이번 방북이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 간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실제 그의 염원은 2000년과 2007년에 각각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1·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동행한 재계 인사도 7명에서 17명으로 늘어났다. 현대그룹뿐 아니라 삼성전자도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평양에서 연간 5만대 규모의 TV 등 가전제품을 위탁 생산했다. 제조업 기반의 국내 대기업이 진출한 첫 사례다. 이후 11년 만에 4대그룹 총수급 인사들이 정상회담 방북길에 동행했다.

남북 교류의 빗장이 열리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지난해 12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남북한 경제통합 분석모형 구축과 성장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향후 30년간 남북경협에 따른 한반도 경제성장 효과를 약 419조원으로 내다봤다. 다만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이행이 선결조건이다. 남북 당국 간 대화와 화해의 실마리가 풀려도 세계의 대북제재 일변도에선 국가나 개별기업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섣부른 기대는 경계하되 남북경협으로 평화와 번영의 불씨를 살려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정부가 구상하는 한반도 신경제가 탄력을 받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남북의 문은 3년 안에 열려 경제가 제일 먼저 남북의 통로를 만들고 거기에 사회, 문화 등이 뒤따라가고, 맨 나중에 정치적 통일이 이뤄질 것이다." 1990년 울산지역 계열사 간부 특강에서 밝힌 아산의 예견이다. 시기의 차이는 있어도 여전히 방향성을 부정하긴 어렵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이 그 길로 본격 들어서는 대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산 필생(畢生)에 미완의 과제로 남은 대북사업이 재계 3세 경영에서 완성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두려워하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아산의 "자네, 해봤어?"라는 짧고 강렬한 한마디에 담긴 개척·도전 정신을 발휘하면 한국 경제에 새로운 100년을 여는 탄탄대로가 열리지 않겠는가.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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